이성한 경찰청장이 5일 전격 사의를 표명하자 경찰 내부는 침통한 기류에 휩싸였다. “올 것이 왔다”는 반응이 다수였으나 경찰청장 2년 임기제가 유명무실해졌다는 푸념도 나왔다.
이 청장을 낙마시킨 것은 결국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 수사 과정에서 드러난 경찰의 허술함이었다. 지난 6월 12일 전남 순천에서 발견된 시신이 유씨로 판명되면서 검·경의 ‘헛발질’은 연일 성토의 대상이 됐다. 시신과 유류품을 꼼꼼하게 확인만 했더라도 유씨의 신원을 확인할 수 있었다는 비판이 계속됐다. 게다가 시신 발견 현장을 제대로 보존하지 못했고, 순천 주민의 별장 제보도 경찰이 묵살한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의 부실한 초동 대응이 드러나자 변사체 처리 부실 책임을 지고 전남지방경찰청장과 순천경찰서장이 직위해제됐지만 역부족이었다. 결국 경찰청장까지 옷을 벗게 됐다. 한 경찰 간부는 “유씨 사건과 관련해서 부실한 수사와 대응이 드러나면서 변명할 수도 없고, 변명해 봐야 통하지도 않는 상황이 계속됐다”고 말했다. 이 청장도 사퇴 기자회견에서 “일선에만 책임을 물어서 될 일이 아니다. 경찰의 일신을 위해 청장이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 청장이 사퇴하면서 경찰청장 임기제 논란도 다시 불거졌다. 2003년 경찰청장 임기 2년을 보장하는 경찰법 개정안이 통과된 이후 임명된 8명의 경찰청장 중 임기를 지킨 사람은 이택순 전 청장 한 명뿐이다. 임기 6개월을 남기고 사퇴한 이 청장을 비롯해 최기문 허준영 어청수 강희락 조현오 김기용 전 청장 등은 모두 임기를 채우지 못했다.
이 청장이 사퇴함에 따라 후임 경찰청장 인선도 주목받고 있다. 현재 강신명 서울지방경찰청장과 최동해 경기청장, 이인선 경찰청 차장이 후임 경찰청장 후보군에 포함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경남 합천 출신으로 경찰대 2기인 강 서울청장이 후임 청장이 되면 사상 첫 경찰대 출신 경찰수장이 된다. 강 서울청장은 지난해 청와대 사회안전비서관을 지냈다.
대구 출생에 고려대 법학과를 졸업한 최 경기청장은 사법시험(25회)과 행정고시(32회)를 합격해 고시 특채로 경찰에 입문한 경찰의 대표적인 ‘브레인’으로 통한다. 경찰청 특수수사과장과 서울청 수사부장 등을 지낸 수사통이다.
서울 출신인 이 경찰청 차장은 서울에서 출생했고 경찰 내 인사, 기획 분야에 밝은 ‘기획통’으로 통한다. 강 서울청장보다 선배로 경찰대 1기 대표주자로 꼽힌다.
백상진 기자 sharky@kmib.co.kr
[수장 동시 사퇴… 침통한 군·경] “변명도 못할 상황… 올 것이 왔다”
입력 2014-08-06 05: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