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로 뉴스] 말기 암 환자들에게 가장 필요한 건… 인생을 돌아볼 시간입니다

입력 2014-08-07 03:24
‘삶을 잘 마무리하도록 도와주는 의사’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윤영호 서울대 의대 교수가 서울 종로구 대학로 서울대병원 암병동에서 한국인의 임종 실태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최근 ‘나는 한국에서 죽기 싫다’는 책을 내기도 한 윤 교수는 “죽음의 지연이 아니라 삶의 완성이 말기 환자들의 목표가 돼야 한다”고 말한다. 구성찬 기자

한 해 우리나라에서 평균 25만명이 죽습니다. 그중 자살이나 사고사는 10% 남짓. 나머지 90%는 병이나 암, 고령 등으로 죽습니다. 암 사망자는 7만명. 암 환자를 비롯해 대다수 죽음은 어느 날 갑자기 들이닥치는 게 아닙니다. 말기라는 시간을 지나쳐 임종에 이릅니다. 의학적으로 말기란 판정은 ①적극적인 치료에 반응하지 않는 상황에서 ②상태가 더욱 악화되고 있으며 ③잔여수명이 3∼6개월 있는 상태에서 내려집니다. 삶의 마지막 시간, 말기를 돌보는 의사가 있습니다. 임종의료 의사, 완화의료 의사, 호스피스 의사라고 부릅니다. 서울대 의대 윤영호(50) 교수도 그중 한 명입니다. 그는 지난 25년간 의사 생활의 대부분을 말기 암 환자들과 보냈습니다.

한국인의 마지막 모습

윤 교수는 최근 한국인의 임종 실태를 다룬 책 '나는 한국에서 죽기 싫다'(엘도라도)를 출간했습니다. 한국인의 임종을 누구보다 많이 지켜본 사람으로서 그는 "언제까지 이렇게 비참하게 죽도록 내버려둘 것이냐고 책을 통해 묻고 싶었다"고 말했습니다.

한국인의 마지막 모습은 어떨까요? 윤 교수는 세 가지 얘기를 들려줬습니다.

말기 환자 가운데 자신이 죽는다는 걸 아는 사람은 58%에 불과합니다. 죽음에 임박한 환자 10명 중 4∼5명은 자신에게 삶이 얼마나 남아 있는지도 모르고 있다가 죽음에 이릅니다.

말기 환자라는 사실을 알았다 하더라도 남은 시간이 비참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병원을 전전하며 가망 없는 연명치료에 매달리거나 경제적 부담 때문에 치료도 없이 극심한 통증 속에서 숨을 거두기도 합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사랑한다" "고맙다"는 말 한 마디 남기지 못한 채 죽음의 강을 건너가는 사람도 적지 않습니다.

말기 환자들을 상대로 조사해 보면 집에서 임종을 맞고 싶다는 응답자가 40∼50%에 이릅니다. 그러나 2012년 조사에 따르면 집에서 죽는 사람은 18.8% 밖에 안 됩니다. 70.1%는 병원에서 죽습니다. 집에서 치료하다가도 임종이 가까워지면 병원으로 옮기는 실정입니다. 집은 가장 이상적인 임종의 공간이지만 누구도 집에서 죽지 못합니다.

윤 교수는 "말기의 풍경이 비참하다 보니 죽음은 아이들에게도 보여주지 말아야 할 것이 되어버렸다"면서 "한국인의 가정과 일상에서 죽음이 소거됐다"고 말했습니다.

아름다운 죽음

드물긴 하지만 아름다운 임종도 있습니다. 윤 교수도 몇 차례 그런 임종을 보았습니다.

"부인이 대장암 말기였는데, 남편이 대소변을 다 받아냈어요. 남편은 누구의 도움도 원치 않았고 스스로 그 일을 하고자 했어요. 다니던 회사까지 그만두고 병동에서 마지막 시간을 같이 보내던 그 두 분의 모습이 아직도 기억나요."

집에서 임종하는 경우도 보았습니다.

"30대 초반의 여성 말기 환자가 집에서 지내고 있었어요. 제가 정기적으로 집을 찾아가 치료를 했죠. 식도가 막혀서 거의 못 먹는 상태였는데도 1년을 살다가 죽었어요. 집에 가보면 말기 환자가 있는 집이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가족들 관계가 화목했어요. 그 환자는 말기였지만 마지막 순간까지 온전히 가족의 일원으로 살다가 죽었죠."

'좋은 죽음'이나 '죽음의 질'을 논할 때 임종 장소는 중요한 이슈가 됩니다. 지금으로부터 25년 전인 1989년에는 집에서 임종하는 경우가 77.4%나 될 정도로 일반적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새 병원이 지배적인 임종의 장소가 되고 말았습니다. 윤 교수는 "병원이 과연 바람직한 임종의 장소인가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시작할 때가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말기, 자기 인생을 완성하는 시간

한 사람의 인생은 죽음으로 완성됩니다. 삶에서 죽음으로 넘어가는 서너 달의 짧은 시간, 말기는 삶을 완성하는 시간입니다. 윤 교수는 "말기 환자라고 해도 누구에게나 3개월 정도의 시간은 주어진다"면서 "그 시간을 죽음의 지연이 아니라 삶의 완성을 위해 써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윤 교수가 만나는 환자들은 전부 말기 암 환자들입니다. 항암 등 적극적인 치료가 불가능해진 상태에 있는 이들로 잔여수명이 얼마 안 남은 사람들입니다. 윤 교수는 이들에게 완화치료를 통해 통증을 조절해 주는 한편 죽음을 받아들이고 남은 시간 인생을 정리하는 데 집중하도록 돕습니다. 처음 만나는 환자에게 그는 자신을 '삶을 잘 마무리하도록 도와주는 의사'라고 소개합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윤 교수가 만나는 환자들은 2주나 한 달 안에 대부분 사망합니다. 다들 너무 늦게 찾아오기 때문입니다. 말기라는 사실을 몰라서 늦고, 연명치료에 매달리다 늦고, 혼자 고통을 참다가 늦습니다.

윤 교수는 1992년 '암이라는 사실을 환자에게 알릴 것인가'라는 주제로 첫 논문을 썼습니다. 2004년에는 '말기암이란 사실을 알려야 하나'라는 논문을 써서 세계적 학술지에 실리기도 했습니다. 말기 환자에게 사실을 알려야 할 것인가는 결코 가볍지 않은 쟁점이지만 그의 입장은 분명합니다.

"환자에게 빨리 알려야 합니다. 삶을 다시 펼쳐보며 아름다웠던 추억들을 돌아보고 마지막까지 의미 있는 삶을 완성하는 시간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걸 깨달아야 합니다. 너무 늦어서 그들의 인생을 완성할 시간을 빼앗으면 안 됩니다."

국가가 책임져야 할 시간

말기를 맞은 시한부 인생들을 괴롭히는 질문은 다음 세 가지입니다. 너무 고통스럽지 않을까? 가족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을까? 모두에게 감사하며 품위 있게 임종할 수 있을까? 이 질문들에 대해 확신을 줄 수 있다면 말기의 삶은 좀더 편안해질 수 있습니다.

가족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면서, 고통스럽지 않고, 품위 있게 죽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윤 교수는 호스피스 시설의 확대와 국가의 역할을 해법으로 제시합니다. 그는 아파트 중심의 주거문화 속에서 현실적으로 적절한 임종의 장소는 집 근처 호스피스 시설로 봅니다. 그가 "호스피스에서 죽게 하자"고 외치는 이유가 거기 있습니다.

"콘도처럼 편안하고, 가족들이 쉽게 찾아올 수 있고, 의료진이 항상 대기하는 환경이라면 죽음을 맞이하는 장소로서 적당하지 않을까요?"

호스피스는 죽음의 질을 높이는 데 핵심적인 시설입니다. 고통을 조절하는 치료가 가능하고 가족들의 곁에서 품위를 지키며 임종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국내 호스피스 병상 수는 880개로 필요 병상(2500개)의 35.2% 수준을 겨우 충족하고 있습니다. 윤 교수는 "정부가 예산을 지원해 대학병원의 장례식장부터 호스피스센터로 바꿨으면 좋겠다"며 "우리에게는 장례식장이 아니라 호스피스가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시설 좋고 접근성 좋은 호스피스가 늘어난다고 해도 경제적 부담이라는 문제는 여전히 남습니다. 이 난제에 대해 윤 교수가 찾아낸 답은 '국가'입니다. 누구나 호스피스에서 마지막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국민의 마지막 시간은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김남중 기자 n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