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이 날다’ ‘터치’ 등 예술영화를 연출한 민병훈(45) 감독은 2년 전 경기도 양주 장흥아트파크에서 작업하는 김남표(43) 마리킴(37) 작가의 작업실을 방문했다. 화가의 삶과 작품세계를 영상에 담기 위해서였다. 두 작가와 500일간의 동행이 시작됐다. 두 작가를 밀착 촬영해 단편영화 ‘감각의 경로’(김남표)와 ‘페르소나’(마리킴)를 완성했다.
러시아 국립영화대학을 나온 민 감독은 ‘벌이 날다’로 1998년 이탈리아 토리노영화제 대상을 차지하고 ‘포도나무를 베어라’로 2007년 체코 카를로비바리영화제에 초청되는 등 왕성한 활동을 펼쳐왔다. 그런 가운데 다른 분야 예술가들의 삶에 관심을 갖게 됐다. 예술적 영감을 서로 주고받으며 다양한 장르가 접목된 작품을 선보이고 싶었기 때문이다.
민 감독은 5일 서울 종로구 인사아트센터에서 시사회를 열었다. 각 15분가량의 영화는 주인공 김남표와 마리킴의 내면세계와 작업 열정 등을 담았다. 김남표는 얼룩말과 호랑이 등 동물들이 있는 자연을 초현실적인 풍경으로 그려내고, 마리킴은 커다란 눈을 가진 여성 ‘아이돌(eyedoll)’을 통해 미디어에 의해 주입된 스타에 대한 고정관념을 비꼬았다.
두 작가의 그림을 감상한 가수 HUGH KEICE(휴키이쓰)와 4인조 프로듀서 그룹 WE ARE THE NIGHT(위아더나잇)은 이를 음악으로 표현했다. 영화와 미술의 시각적인 자극과 감수성을 독특한 선율에 담아냈다. 영화·미술·음악 세 가지 장르가 결합된 이색 전시 ‘판타스마고리아(Phantasmagoria·환등)’가 17일까지 인사아트센터에서 열린다.
전시장에는 민 감독의 단편영화가 상영되고, 두 작가의 작품 10여점이 걸렸다. 2011년 타블로 앨범 ‘열꽃’의 아트워크를 담당한 김남표는 자연과 문명, 동양과 서양, 과거와 현대가 어우러진 ‘인스턴트 풍경-양성(兩性)’ 시리즈를 공개했다. 그룹 2NE1의 앨범 재킷을 제작한 마리킴은 만화 같은 캐릭터의 인물 그림을 내놓았다.
휴키이쓰와 위아더나잇은 전시 기간 중 목·금·토요일 저녁에 라이브 공연을 연다. 전시회에서 작품에 대해 고개를 끄덕이는 관람객이 얼마나 될까. 작가는 없고 작품만 걸려 있는 공간에서 관객들은 얼마나 작품과 교감할 수 있을까. 이번 전시는 장르가 다른 예술가들의 협업을 통해 어려운 미술을 이해시키고 대중화를 꾀하기 위해 마련됐다.
민 감독은 “내 영화의 바탕은 미술에 있다”며 “화가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영화와 미술의 대중적인 소통 작업을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마리킴은 “‘터치’에서도 단역으로 출연했는데 무척 재미있는 경험”이라고 밝혔다. 김남표는 “감독께서 ‘그림보다 연기가 낫다’고 했다. 하정우처럼 배우 겸 화가를 심각하게 고민 중”이라며 웃었다.
이광형 선임기자 ghlee@kmib.co.kr
“영화·미술의 대중적 소통 작업 계속할 것”
입력 2014-08-06 0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