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서울에서 고교를 다니는 A군. 국어학자라는 꿈을 위해 명문대 국문과를 지망하고 있다. 이를 위해 학교에서 문법·문학·한문학·고전 수업 등을 집중적으로 듣는다. 지망하는 대학에서 학생을 선발할 때 이들 과목의 내신 성적을 중요 평가기준으로 보기 때문이다. 과목 담당 교사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으려고 토론식 수업에서 발제자로 나서는 등 열성적이다.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을 위해 수학·과학 수업도 소홀히 하지 않는다. 의대를 지망하는 같은 반 친구 B군은 생물 등 과학 과목에는 강점을 보이지만 생명윤리 과목 점수 때문에 고민하고 있다. 경제학도가 되려는 C군은 과거 문과생들이 배우지 않았던 확률·통계·미적분학 수업을 착실히 듣고 있다. 이들 세 친구는 한 교실에 모여 공통 수업을 들을 때보다 대학생처럼 강의실을 옮겨 다닐 때가 많다.
◇문·이과 통합 어디까지 왔나=문·이과 통합 후 이상적인 고교의 모습을 교육 전문가 등의 조언으로 구성해봤다. 공교육 안에서 적성·진로 맞춤형 학습이 이뤄지고 문·이과 구분 없이 기본 소양을 갖추도록 한다. 자연스럽게 ‘교과교실제(이동수업)’가 활성화되고 토론식 수업이 실질적으로 이뤄진다. 전공 지식을 충분히 갖추고 대학에 진학하므로 기초학력 미달 우려도 불식시킬 수 있다. 문과반 이과반으로 나뉘어 대입과 관계없는 수업 때는 엎드려 자는 지금의 교실과 차이가 크다.
지난해 논의가 시작된 문·이과 통합은 현재 교육과정을 만드는 작업이 진행 중이다. 교과별 최소 이수단위 등 교육과정 총론은 다음 달 발표되고, 세부 내용까지 정하는 작업은 내년 9월 마무리된다. 이후 교과서 개발 등을 거쳐 현재 초등학교 6학년생이 고교생이 되는 2018학년도에 도입된다. 이들이 2021학년도에 문·이과 구분 없는 수능을 무사히 치르면 문·이과 통합은 일단락된다. 교육과정 개편→수능체제 개편→대입 전형제도 변경 등으로 이어지는 과정이 이제 시작단계인 셈이다.
◇2대 난제=가상 사례로만 보면 변화가 그다지 어려워 보이지 않지만 곳곳에 난제들이 발목을 잡고 있다. 2021학년도까지 완료되기 어렵다는 비관론이 나오는 이유다. 먼저 대입체제 개편이다. 우리나라 고교 교육은 대입에 종속돼 있다. 아무리 좋은 교육과정을 만들어도 서열화된 대학 구조로 인해 대입 제도에 따라 교육과정이 왜곡된다. ‘EBS 70%룰’(EBS 교재에서 수능 출제를 70% 이상 한다는 규칙)이 상징적이다. 고교 교실에서는 수업 대신 EBS 강의를, 교과서 대신 EBS 교재를 보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만약 현재와 같은 수능 체제에서 융복합형 문제가 나올 경우 사교육 시장만 배불릴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현재 수능에서도 학문 융합형 사고를 요하는 문제는 고난도로 분류된다. 예를 들어 피카소 그림(미술교과)을 과학적으로 분석하는 문제가 나오는 방식이다. 교과 내 과목들만 융합을 하더라도 어려운 건 마찬가지다. 이렇게 되면 교육부가 쉬운 수능 기조를 포기하거나 문제은행식 출제, 수능의 자격고사화 등 선택의 기로에 놓일 가능성이 높다. 사교육 억제책과 밀접한 쉬운 수능 기조는 포기하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되므로 문제은행식이나 자격고사화될 가능성도 있다. 수능이 변별력을 상실하면 대학에 막중한 의무가 지워진다. 사교육을 팽창시키지 않으면서도 아이들 잠재력을 평가해 선발하는 숙제가 던져진다. 학생부 내실화는 대학과 고교의 신뢰의 문제로 단시일 내에 해결될 사안이 아니다.
또한 교원양성·연수체계의 대대적인 개혁이 필수적이다. 그동안 개별 학문의 틀 속에서 공부하고 교수법을 익혔던 교사들을 준비시켜야 한다. 문·이과 통합형 사고를 해본 적 없는 대다수 교사들에게 문과와 이과를 아우르는 인재를 가르치라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아울러 교원 양성기관의 교육과정을 전면적으로 개편해야 한다. 이는 학문 간 장벽을 허무는 일로 결코 쉽지 않다. 일선 학교의 교사 수요는 교원양성기관 혹은 해당 교과의 대학생 수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김무성 정책본부장은 “학문 간 칸막이·학문 이기주의 등과 적당히 타협한다면 혼란만 초래할 것”이라며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문·이과 통합교육은 사교육 팽창으로 귀결된다”고 주장했다.
이도경 기자 yido@kmib.co.kr
[단독] 문·이과 통합 논의 진척 정도는… 대입·교원 양성 체제 개편 최대 난제
입력 2014-08-06 0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