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드라큘라’의 공연장에는 유독 오페라글라스(소형 쌍안경)를 손에 든 관객들이 많다. 2000석 규모의 대형극장인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무대라는 이유도 있겠지만, 주연 배우인 김준수(28)의 표정 하나 하나 까지 놓치지 않겠다는 열성팬들이 많다는 사실도 크게 작용한다. 김준수가 무대에 서는 공연 회차는 일찌감치 매진 돼 표를 구하기가 어렵다. 암표 거래도 비일비재하다.
스타에 달려있는 흥행 성적표
그룹 JYJ 출신인 김준수의 등장 후 국내 뮤지컬 산업은 스타 의존증이 심해졌다. 2008년 그가 탈퇴하기 전 그룹 동방신기의 팬클럽 회원 수는 약 80만 명이었다. 강력한 팬덤과 탄탄한 가창력을 무기로 2010년 뮤지컬 ‘모차르트’에 도전했던 그는 현재 1회 공연 당 수 천만원대의 개런티를 받는 명실상부 최고 뮤지컬 배우다. 기존 개런티와 별도로 유료관객비율에 따라 런닝 개런티를 더 받는 방식으로 계약을 하면서 업계 분위기를 확 바꾸어 놓기도 했다.
한 뮤지컬 제작사 관계자는 5일 “김준수가 뮤지컬을 시작한 4년 전과 비교하면 배우들의 개런티가 3∼4배는 올라간 것 같다”며 “전체적인 주연 배우 개런티 상한선이 오른 반면 조연이나 앙상블들의 개런티는 제자리걸음”이라고 말했다.
총 제작비 중 배우 개런티가 절반에 다다를 정도로 높은 비중을 차지하다 보니 어떤 배우를 무대에 세워 최대의 마케팅 효과를 볼지가 제작의 관건으로 작용한다. 이 같은 현상은 뮤지컬의 본고장인 미국과 영국에서는 찾아보기 어렵다. 휴 잭맨, 주드 로 등 이름만 대면 알법한 톱 배우들도 뮤지컬이나 연극 무대에 종종 오르지만 기존 배우들과 비슷한 개런티를 받고 있다는 것.
원종원 순천향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1990년대 한국 영화가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배우들이 자발적으로 출연료를 삭감했던 것처럼 뮤지컬 시장에서도 이 같은 자정 운동이 일어나야 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창작 뮤지컬 인재 키우는 노력 절실”
국내 최대 티켓예매 사이트 인터파크 티켓의 뮤지컬 예매 주간랭킹 최신(7월30일∼8월5일) 순위를 보자. 미국 뉴욕의 브로드웨이, 영국 런던의 웨스트엔드, 오스트리아 등 동유럽에서 온 작품들이 즐비하다. 1∼10위에는 뮤지컬 ‘시카고’ ‘캣츠’ ‘모차르트’ ‘드라큘라’ ‘위키드’ ‘블랙 메리 포핀스’ ‘헤드윅’ 블러드 브라더스‘ ’브로드웨이 42번가‘ ’조로‘의 이름이 올라와 있다.
이 중 6위에 안착한 ‘블랙 메리 포핀스’를 제외하고는 모두 라이선스 공연이다. 라이선스 공연은 원작자의 허가를 받고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음악, 대본만을 가지고 들어와 재창작을 하는 형태와, 배우들의 동선, 소품 하나까지 원작자가 개입하는 레플리카 형태로 나뉜다. 전체 수익의 10%가량이 원작자에게 돌아가는 만큼 국내 제작사의 부담이 아주 크다.
얼마나 많은 작품이 국내에 들어와 있을까. 미국 뉴욕 브로드웨이 협동조합인 ‘브로드웨이 리그’가 5월 발표한 ‘장기 공연 순위’에서 순위권 작품 대부분이 이미 국내 관객들을 만났다. ‘오페라의 유령’ ‘캣츠’ ‘시카고’가 각각 1∼3위에 올라와 있는데 세 작품 모두 올해 국내에서 공연됐거나 현재 공연중이다. 10위권에 오른 ‘라이온 킹’ ‘레미제라블’ ‘맘마미아’ ‘렌트’, 20위권에 오른 ‘위키드’ ‘미스 사이공’ ‘저지 보이스’ ‘브로드웨이 42번가’ ‘그리스’ 등이 매년 새로운 캐스트를 통해 국내 관객들에게 소개된다.
뮤지컬 시장 위기 돌파의 키워드는 창작 뮤지컬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지만 관객들의 외면을 받고 있는 게 문제다. 해외에서 검증된 작품이 국내에 들어오다 보니 완성도 면에서 창작 뮤지컬이 따라가지 못한다.
창작 뮤지컬을 주로 제작해 온 송승환 PMC 프로덕션 대표는 “수많은 라이선스 뮤지컬이 들어오면서 배우들은 무대에 대한 훈련이 된 반면 뮤지컬 전문 작가와 연출자가 길러지지 못한 상황”이라며 “뮤지컬 학과가 생겨나지만 이 또한 배우 중심의 교육이다. 전문 작가와 연출가 등을 키우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김미나 기자 mina@kmib.co.kr
[위태로운 뮤지컬 산업] (下) 수입 작품이 점령한 무대
입력 2014-08-06 04: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