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의무를 다하기 위해 군대에 간 아들이 전시 상황도 아닌데 주검이 돼 돌아오는 기막힌 이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차마 입에 담기도 힘들 정도인 선임병들의 가혹행위와 집단구타로 숨진 육군 28사단 윤모 일병 사건에 온 국민이 분노하고 있다. 당장 군에 입대한 자식을 둔 부모들은 불안에 밤잠을 설치고 있고, 군대에 보내야 할 아들을 가진 부모들은 입영거부 움직임까지 벌일 태세다. 기가 막힌 것은 군 수뇌부가 윤 일병 사망 사건의 전모를 파악하고도 넉 달 가까이 은폐했다는 점이다.
군은 윤 일병이 지난 4월 7일 사망한 이후 말단 병사부터 간부까지 조직적으로 사건을 숨기려 했다. 가해자들은 “윤 일병이 냉동식품을 먹다 죽은 걸로 하자”며 입을 맞췄고, 동료 병사들에게는 비밀 유지를 부탁했다. 사단 헌병대와 육군 지휘부는 구체적인 전모를 파악했지만 처음 병사들이 사건을 은폐하기 위해 했던 거짓말을 되풀이했다. 사단본부는 사건이 외부로 알려지는 것을 막기 위해 장교들의 휴대전화까지 수거했다고 한다. 한민구 국방부 장관은 지난주 언론 보도를 보고 사건을 알았다고 하니 오합지졸이 따로 없다. 사건이 터지면 일단 거짓말하고 숨기는 것을 일상으로 하는 군에 나라 안보를 어떻게 맡길 수 있겠는가.
군이 본격적인 병영문화 개선 조치를 내놓은 지 15년이 지났다. 그런데도 군대 내 왕따나 집단폭행에 의한 사망·자살 사건이 계속되는 것은 심각한 범죄라는 의식이 없고 처벌도 약하기 때문이다. 지휘관들은 군 기강 확립 차원이라며 선임병들의 후임병 폭행을 묵인해주는 경우가 많다. 군 당국은 이번 사건의 지휘라인에 대해서도 보직해임이나 정직·견책 등 솜방망이 징계에 그쳤다. 권오성 육군참모총장이 사임의사를 밝혔지만 한 사람 옷 벗는 것으로 해결될 일이 아니다. 국방부 검찰단은 조직적인 보고 누락·은폐 의혹에 대한 철저한 진상조사와 함께 가해자 형사처벌은 물론 책임 있는 지휘관들과 방조자들도 엄히 징계해야 한다.
이번 사건 이후 군대 내 휴대전화 허용을 검토하는 등 백가쟁명식 해법이 쏟아지고 있다. 근본적인 혁신 없이 대증적 요법으로 성난 민심을 잠재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셀프 개혁’에 맡겨서도 곤란하다. 외부 인사가 참여한 중립적 기구를 통해 병영문화 전반을 점검하고 시대가 바뀌었는데도 수십년간 적폐가 그대로 남아 있다면 도려내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도 5일 국무회의에서 “모든 가해자와 방조자들을 철저하게 조사해 잘못 있는 사람들은 일벌백계로 다스리겠다”고 밝혔다. 또 “병영시설을 수용공간에서 생활공간으로 바꾸고 군뿐만 아니라 학교에서부터 인성교육과 인권교육을 강화하는 것을 포함해 근본적인 방지책을 만들어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가정폭력과 학교폭력이 군대폭력으로 이어지고 있는 게 우리 현실이다. 폭력에 관대한 사회가 잠재적 악마들을 키우지 않았는지 돌아봐야 한다. 무엇보다 어렸을 때부터 남을 배려하고 인권을 존중하는 인성교육이 중요한 이유다.
[사설] 은폐 밥 먹듯이 하는 軍 더 이상 용납 안 된다
입력 2014-08-06 04: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