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미계 청년 美원조기관 직원 위장 쿠바서 반정부 활동 들통

입력 2014-08-06 02:08
미국이 베네수엘라와 페루, 코스타리카 등 남미계 출신 청년들을 국무부 산하 대외원조기관인 국제개발처(USAID) 직원으로 위장해 쿠바에서 반정부 세력을 조직화하려다 발각됐다고 AP통신이 4일(현지시간) 보도했다.

통신은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오랫동안 불신으로 점철된 쿠바와의 관계를 종식하고 새로운 시대로 접어들었다고 강조했지만, 이번 사건으로 얼마나 허구인지를 단적으로 보여줬다고 꼬집었다.

USAID가 2009년부터 주관한 일명 ‘여행객 프로그램(Travelers Program)’에는 코스타리카 출신 페르난도 무릴료(29) 등 10여명이 참가했다. 이들은 정치적 목적을 숨기고 보건환경 개선을 위한 미 정부의 노력을 강조하기 위해 ‘에이즈 예방 워크숍’을 쿠바 전역에서 개최했다.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체제 전복을 위한 정치적 활동가로 탈바꿈시킬 젊은이들을 모집했다. 은어를 통해 교신하는 법도 배웠다. 예를 들어 ‘머리가 아프다’는 쿠바 당국의 감시를 받고 있다는 뜻이며, ‘너의 여동생이 아프다’라는 말은 ‘미션을 빨리 끝내라’는 의미다.

하지만 스파이 활동을 하기에는 이들에 대한 교육이 너무 짧았다. 쿠바 정보 당국의 감시망을 피하는 방법을 고작 30분간 교육받았으며 임금은 시간당 5.41달러(5560원)에 불과했다. 결국 페르난도는 2010년 4월 붙잡혔다. 쿠바 법에 따르면 스파이 행위는 징역 10년의 형에 처해질 수 있다.

이번 사건은 미국 내 정쟁으로 번질 조짐이다. 민주당의 패트릭 리히 상원의원은 “오랫동안 대외원조 활동에 종사해 쌓은 USAID의 신뢰도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우려했다. 반면 공화당의 일리나 로스-레히티넨 상원의원은 “우리는 계속 카스트로 정권에 압박을 가해야 하며 쿠바 국민을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앞서 AP통신은 지난 4월 미국이 2009년부터 2012년까지 USAID를 통해 160만 달러를 투입해 쿠바의 젊은층을 중심으로 반정부 성향의 인터넷 네트워크를 조직하려 했다고 보도했다.

이제훈 기자 parti98@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