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야볼, 퍼스트!” “코리아, 파이팅!”
태풍 나크리가 중부지방을 비켜간 지난 3일. 경기도 이천시 LG챔피언스파크 야구장에 쩌렁쩌렁한 여자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한국 여자야구 국가대표팀 주전포수 곽대이(32) 선수가 마스크를 머리에 올려 쓰고 선후배 선수들을 독려한다.
이들은 전국 동호인야구단에서 선발된 정예 여자야구 선수들이다. 국내 최초 여자야구 세계대회 ‘LG배 국제여자야구대회(22~25일)’에 참가하기 위해 첫 소집 훈련에 돌입했다. 이천시 LG챔피언스파크에서 개최되는 이번 대회엔 한국 2개 팀과 미국·호주·인도 등 7개국 8개 팀 선수 150여명이 참가한다. 대표팀 주장 유경희(36) 선수는 “국내에서 열리는 첫 여자야구 세계대회인 만큼 좋은 결과를 내기 위해 열심히 준비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아직 태동 단계인 한국 여자야구는 세계 여자야구로 볼 때 중하위권에 속한다. 야구의 본고장 미국에선 1800년대 후반부터 여자팀이 활동했다. 일본 여자야구는 최근 세계대회에서 3연패를 달성했을 정도로 실력과 인기가 높다. 초등학교에서 기업체까지 야구팀을 보유하고 있는 미국이나 일본에 비하면 한국 여자야구는 아직 실업팀이나 학교 야구팀이 없는 상태다.
‘동네야구’ 수준이던 한국 여자야구는 2006년 말 한국여자야구연맹(WBAK)이 출범하면서 뼈대를 갖췄다. 남자프로야구 열풍에 여자야구 경기가 TV중계까지 타면서 최근 급격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현재 여자야구연맹에 정식 등록된 팀은 41개이고, 선수는 900여명이다. 여자들도 더 이상 ‘보는 야구’에 그치지 않고, ‘즐기는 야구’로 옮겨가는 상황이다.
정진구 한국여자야구연맹 부회장은 “대부분의 학교에서 과중한 경비와 진로불투명, 부상 등의 이유로 여자 야구팀 창단을 꺼리고 있다. 하지만 연맹에선 저변확대를 위해 여학생 야구팀 창단에 힘을 쏟고 있다”고 밝혔다.
여자야구 대표팀 선수들은 대부분 생업이 따로 있는 아마추어이고, 직업과 나이도 다양하다. 주중에는 직장인으로, 주말에는 선수로 ‘이중생활’을 즐긴다. 다른 운동을 하다가 야구에 재미를 느낀 ‘선출(選出·선수출신)’에서부터 전문 연구직, 학교교사, 학생, 경찰, 요리사, 디자이너, 피부관리사, 전업주부도 있다. 나이도 10대부터 50대까지 고루 분포돼 평균 연령은 30대 중반이다.
특별히 지원해주는 단체도 별로 없다. 하지만 이들이 야구를 위해 기꺼이 주말을 헌납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카이스트(한국과학기술원) 박사 출신인 투수 명현삼(35) 선수는 “9인이 협력해야만 승리할 수 있는 매력적인 스포츠가 야구다”면서 “탁 트인 운동장에서 잘 던지고 잘 때리고 잘 받다보면 한 주의 스트레스가 한순간에 날라간다”고 야구 사랑을 늘어놓았다. 규칙이 다양해 재미있는 야구를 통해 희생과 배려까지 익히게 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야자야구 대표선수들 중엔 야구를 너무 좋아해 혼기를 놓친 이들도 제법 많다고 노경혜 연맹 사무처장은 귀띔한다.
신상민(53) 대표팀 감독은 “여자야구를 이해하고 지도해 줄 수 있는 남자지도자와 연습장이 절대 부족한 현실이다”며 “여자야구가 활성화 되려면 지방자치단체와 남자프로야구단, 기업 등의 관심과 지원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1세대 여자야구 선수들의 유쾌한 도전은 현재 진행형이다. 이들은 걸음마 단계를 벗어나 한국 여자야구의 기초를 다지면서 미래를 만들어 가고 있다.
이천=사진·글 곽경근 선임기자 kkkwak@kmib.co.kr
[앵글속 세상] “男부럽지 않아요… 야구에 빠진 그녀들”
입력 2014-08-06 02:52 수정 2014-08-06 17: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