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로 들어서며 워싱턴DC가 텅 비어가고 있다. 미국 의회가 이달 한 달간 휴회하고, 버락 오바마 대통령도 9일부터 16일간의 긴 여름휴가에 들어갈 예정이다. 지난 2년을 돌아보면 이맘때 도시 전체가 ‘휴지기’에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미국의 여름휴가지로 인기 있는 곳 가운데 하나가 ‘옐로스톤·그랜드티턴 국립공원’이다. 옐로스톤은 와이오밍 몬태나 아이다호 등 3개 주에 걸쳐 있는 미국 최초의 국립공원이다. 인근 그랜드티턴은 여름에도 눈을 인 고봉과 수정같이 맑은 호수로 유명하다.
이곳을 다녀오려는 한국의 지인이나 주위 분들에게 기자가 빼놓지 말라고 권하는 곳이 있다. 이제는 그랜드티턴공원의 한 부분으로 편입된 ‘로렌스 록펠러 자연보전지구(Laurance S Rockefeller Preserve)’이다. 미국 역사상 최대 부호로 꼽히는 ‘석유왕’ 존 D 록펠러 시니어의 손자인 로렌스의 이름을 땄다.
지난해 여름휴가 중 우연히 이곳에 들렀을 때 사막같이 황량한 겉모습에 ‘시간만 낭비 했나’ 후회했다. 하지만 안쪽으로 조금 들어가니 맑은 시냇물이 흐르고 수목이 우거진 오아시스였다. 펠프스 호수로 이어지는 4㎞의 산길은 청량한 공기와 나무에서 뿜어 나오는 피톤치드로 가득 찬 느낌이었다. 온몸과 정신이 맑아지는 듯했다.
이 자연보전지구는 70년간 록펠러 가문의 여름 별장이었다. 로렌스 록펠러는 과거 2000에이커를 미 국립공원관리청에 내놓은 데 이어 2001년 마지막 남은 1106에이커(4.5㎢)를 기부해 이 자연보전지구가 설립됐다.
이마의 땀을 닦으며 산길을 걷다 보면 이 광대한 야생의 자연을 아낌없이 내놓은 인물에 대한 궁금증이 절로 일어난다. 친환경건물 인증을 받은 소박한 방문자 센터에서 로렌스 록펠러가 가졌던 ‘바람’을 확인할 수 있다. 그것은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대중에게 돌려주겠다는 일념이었다. 로렌스의 딸 루시는 2008년 기부식에서 “아버지는 야생 상태의 자연이 인간의 정신을 새롭게 하고 감정과 육체에 대한 치유 기능을 갖고 있다고 믿었다. 자연보전지구 방문객이 이러한 경험을 할 것이란 생각에 매우 흡족해 했었다”고 회고했다.
국립공원 확대에 대한 염원은 로렌스의 부친 존 D 록펠러 주니어까지 올라간다. 어린 시절 방문한 이곳의 아름다움에 감동한 그는 성인이 된 뒤 목장과 각종 개발로 훼손 위기에 처한 옐로스톤과 그랜드티턴 인근의 광대한 땅을 사들이기 시작했다. 그는 1928년부터 자신이 사 모은 사유지를 국립공원에 기부하려 했으나 국립공원 확장에 반대하는 목장주들과 그들의 로비를 받은 의회의 반대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조바심이 난 그는 자신의 땅을 다른 이에게 팔아버리겠다고 정부를 ‘협박’했다. 마침내 1943년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은 행정명령으로 이 땅을 ‘천연기념물(national monument)’로 지정했다. 이때 그가 내놓아 뒤에 그랜드티턴 국립공원에 편입된 땅이 무려 3만5000에이커(141㎢)였다. 경기도 성남시 전체 면적과 비슷하다.
자연보전지구 방문자들이 남긴 방명록에는 로렌스와 그의 부친에 대한 미국인들의 감사와 찬사의 글이 가득했다. 그중에서 기자의 마음을 끈 것은 ‘숭고한(noble) 록펠러가(家)’라는 구절이었다. 그들의 행위를 설명하는 단어로 이만큼 적절한 것이 있을까 싶었다. 한국에서도 이처럼 ‘고결한’ 자본가가 나올 때 우리 자본주의가 새로운 단계에 들어설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워싱턴=배병우 특파원 bwbae@kmib.co.kr
[특파원 코너-배병우] ‘숭고한 록펠러’
입력 2014-08-06 02: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