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성은 기업, 개인 누구에게나 필요한 21세기의 시대정신이자 같이 살아남기 위한 최소한의 에티켓이다. 경기가 좋고 시대가 잘나갈 때는 사람들이 진정성에 관심을 가지지 않다가 지금에 와서 화두로 떠오르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이러니하게도 답은 불황 때문이다. 회복할 기미가 안 보이는 장기 침체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개인이나 회사는 세상이 요구하는 변화를 싫든 좋든 따라가지 않으면 안 된다. 매일 매일 배워야 할 것도 많지만 이 배운 것들을 적용해도 세상은 또 금방 변화하기 때문에 효과는 옛날 같지 않다. 바쁘게 살지만 더욱 힘들고 팍팍해지는 삶 속에서 절대적으로 살아남기 위해 사람들이 택한 전략은 자신의 생존과 직접 관련된 것 이외의 세상사에 절대 마음을 주지 않고 냉담해지고 무관심해지는 것이다.
고객도 투자자도 친구도 이웃도 모두가 험난한 세상으로부터 최소한 사기는 당하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마음의 빗장을 굳게 닫아버린 상황으로 변한 것이다. 한마디로 나뿐 아니라 세상 사람 대부분이 사는 것에 지쳐 자신도 모르게 마음이 점점 얼어붙어 가고 있다. 이런 와중에 성공의 길이라고 알려진 것들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다 따라 해보지만 별 효과는 없고 피곤함만 가중된다.
문제는 이런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이전처럼 논리적이고 합리적으로 떠들어도 고객이나 종업원이나 일반 사람들이나 다 마음의 빗장을 걸어 잠근 상황에서는 소 귀에 경 읽는 상황인 것이다. 최소한 먼저 이들의 마음을 녹일 수 있는 열쇠를 찾지 못한다면 자신이 어떤 뛰어난 생각이나 포부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할 수 없는 무용지물이다. 리더들의 소통의 문제는 더 심각한 문제로 변했다. 사람들은 귀에다만 대고 현란하게 소통하는 리더들의 이야기를 들어줄 여유가 없다. 이처럼 모든 것이 무용지물이 된 상황에서 마지막 열쇠가 진정성이다. 진정성은 어떤 상황에든 사람들의 마음을 자연스럽게 녹이고 힐링해 주는 유일무이한 묘약이기 때문이다.
회사든 개인이든 이야기가 진정성 있게 받아들여지기 위해서는 두 가지 조건을 통과해야 한다. 먼저 자기 자신에게 홀로 하는 이야기와 다른 사람에게 들려주는 이야기가 같아야 한다. 회사라면 우리끼리 모였을 때 사장이 종업원에게 하는 이야기와 홈페이지를 통해 고객이나 투자자에게 하는 이야기가 같아야 한다. 같지 않다면 이 사람이나 회사의 삶은 진정성이 떨어지는, 연기하는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둘째, 이 이야기를 자신에게 들려주거나 고객이나 투자자나 다른 사람에게 들려주었을 때 자신의 마음도 다른 사람의 마음도 진심으로 따뜻하게 열 수 있어야 한다. 이 점에서 진정성이 있는 이야기의 플롯은 내가 세상에 다녀감에 따라 세상이 얼마나 더 따뜻해지고 더 건강해지고 행복해질 수 있는지에 대한 진솔한 이야기다. 회사도 마찬가지다. 우리 회사가 세상에 존재함으로써 고객이나 종업원이나 주주, 국민들을 얼마나 진심으로 행복하게 만들 수 있는지의 이야기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진정성은 집 문 앞에서 잃어버린, 누구나 쉽게 찾을 수 있는 열쇠다. 하지만 사람들은 만취한 술꾼처럼 술에 취해 자신의 집 앞에서 잃어버린 열쇠를 집 앞에서 찾지 않고 단지 거기가 더 밝다는 이유로 가로등 밑에서 엉뚱한 것을 열쇠라고 찾고 있는 것이다.
이 열쇠를 찾지 못한다면 개인이나 기업이 초일류가 된다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 통과하기보다 더 힘들 것이다. 아무리 뛰어난 재능과 기술을 가지고 있어도 진정성이 떨어진다면 사람들은 당장 필요한 그 재능과 기술만 취하고 상대를 자신의 마음에서 가능한 한 빨리 토사구팽시킨다. 많은 사람들로부터 마음으로 토사구팽 당한 사람이나 회사가 초일류로 등극할 수 있는 방법은 어디에도 없다.
윤정구(이화여대 교수·경영학)
[경제시평-윤정구] 21세기의 시대정신, 진정성
입력 2014-08-06 02: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