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설교] 당신은 죽은 자입니까, 산 자입니까

입력 2014-08-06 02:04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 예수님이 사두개인들과 ‘부활’에 대한 논쟁을 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사두개파는 바리새파와는 다르게 내세에 관한 부활신앙이 없습니다. 그저 현실에 안주하며 기득권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형식적인 종교인에 불과했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이들에게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능력에 관한 오해가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그들을 향해 산 자와 죽은 자를 언급하시면서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임을 선포하십니다.

부활의 의미를 살펴보겠습니다. 국어사전에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남’이라고 풀이돼 있습니다. 예수님은 26절 말씀에 “죽은 자가 살아난다는 것을 말할진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로라”고 언급하고 계심에 주목해야 합니다. 즉, 부활에 동참할 수 있는 자, 부활에 참여할 수 있는 자에 대한 응답을 우리에게 묻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럼 누가 부활에 동참할 수 있을까요. 아브라함과 같은 사람입니다. 우리가 아브라함을 말할 때 ‘믿음의 조상’이라고 부릅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창 12:1)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 아브라함은 무작정 고향땅과 아버지의 집을 떠났습니다.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떠나야 할 때 과감하게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나야 함을 말하는 것입니다. 탐욕, 쾌락과 향락, 부정과 부패, 음란과 욕심, 시기와 질투, 독선과 고집과 아집으로부터 떠나야 합니다. 이처럼 믿음은 결단이 필요합니다. 또한 믿음은 행함이 필요합니다. 이 두 가지가 병행될 때 비로소 ‘믿음의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또 한 사람을 소개합니다. 야곱입니다. 창세기 32장을 보면 야곱은 집을 떠난 지 20년 만에 거부가 되어 고향으로 돌아옵니다. 그러나 그에게 인생의 숙제가 있었습니다. 형과의 화해였습니다. 형은 강 건너편에 잘 훈련된 특수부대 요원들을 데리고 야곱을 죽이겠다고 기다리고 있는 상황입니다. 야곱은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습니다. 그리고 야곱은 얍복강에서 날이 새도록 기도를 했습니다. 창세기 32장 24∼25절에는 “야곱은 홀로 남았더니 어떤 사람이 날이 새도록 야곱과 씨름하다가 자기가 야곱을 이기지 못함을 보고 그가 야곱의 허벅지 관절을 치매 야곱의 허벅지 관절이 그 사람과 씨름할 때에 어긋났더라”라고 기록돼 있습니다. 기도 끝에 야곱은 형과 화해를 합니다.

오늘날 한국교회는 기도하지 않는 것이 큰 문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설령 기도한다고 해도 야곱과 같은 전투적인 기도, 생명을 걸고 하는 기도는 하지 않습니다. 기도하지 않기 때문에 분쟁이 계속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서로 기도한다면 분명 화해하는 교회가 될 줄 믿습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5장 25절에서 “죽은 자들이 하나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고 하셨고, 요한계시록 3장 1절에서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인으로서 당신은 죽은 자입니까. 아니면 살아 있는 자입니까. 독수리같이 강하게 살아 움직이는 믿음생활을 통해 하나님의 큰 축복이 함께하시길 기원드립니다.

최진 목사(구성성결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