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적 표현의 새 가능성 3D 작품으로 이야기한다

입력 2014-08-05 02:23
3D 프린터로 출력한 3D 조형물이 예술작품으로 진화하기 시작했다. 서울시립미술관에서 10일까지 열리는 ‘유니버설 스튜디오, 서울’에 전시된 독일 출신 작가 올리버 그림의 3D 작품 ‘게임즈’. 무채색의 인물들에서 한국의 남·북간 긴장 상황을 느낄 수 있다. 서울시립미술관 제공
지난 달 사비나 미술관에서 열린 ‘3D 프린팅&아트 전시회’에서는 관람객들이 50여점의 3D 프린팅 작품에 뜨거운 관심을 보였다. 사비나미술관 제공
어두컴컴한 공간이다. 4개의 벽에 설치한 선반엔 높이 10㎝의 사람 모형이 10여개 놓여져 있다. 조명이 비추는 쪽으로 시선을 돌리면 누군가는 총을 겨누고 있고 누군가는 책을 읽으며 여유를 즐기고 있다. 무채색의 이 작은 모형들은 3D 프린터로 만들어낸 것이다.

오는 10일까지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리는 ‘유니버설 스튜디오, 서울’에 독일 출신의 작가 올리버 그림이 내놓은 작품 ‘게임즈(Games)’다. 1995년부터 한국에 정착해 활동 중인 그림은 평화로운 일상을 보내고 있는 중에도 여전히 남·북간 팽팽한 긴장은 계속되고 있음을 3D 프린팅과 조명으로 표현했다.

3일 미술계 관계자는 “전 세계적으로 3D 프린터와 예술을 결합한 작업이 이뤄지고 있는 상황에서 국내 미술계와 작가들이 뒤늦게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11월엔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가 3D 프린팅 행사를 열면서 미술 전시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 율곡로 사비나미술관에서도 지난 달 4일까지 ‘3D 프린팅&아트 전시회’라는 제목으로 21명의 국내·외 작가들이 설치미술, 그림, 조각 등 50여개 작품들을 선보였다.

지난 3월엔 제일기획이 유엔난민기구와 공동으로 국내·외 난민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제고하기 위해 서울시립미술관에서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란 주제로 전시회를 가졌다. 국내·외 난민 중 20명을 선정해 3D 프린팅으로 한 뼘 크기의 미니어처를 만들어 미술관 곳곳에 설치했다.

이미 해외 미술계에선 3D 프린터로 작업하는 작가들이 많다. 미국 미니멀아트의 대표주자 프랭크 스텔라는 2000년대 중반부터 3D 프린터를 사용했다. 이스라엘 출신의 미국 작가 네리 옥스만은 3D 프린팅 작품을 뉴욕 현대미술관(MOMA)에서 전시했다.

네덜란드의 반고흐미술관은 최근 일본의 후지 필름과 함께 반 고흐의 작품 대표작 ‘해바라기’, ‘아몬드 꽃’ 등 5점을 질감과 색채를 그대로 재현했다. 일부 작품은 3000만원이 넘는 고가에 팔리기도 했다.

3D 프린터를 경험한 국내 작가들은 발전 가능성에 기대를 걸고 있다.

동대문 이간수문을 프린팅해 사비나미술관에서 전시한 권혜원씨는 “4개월이란 시간이 걸렸다”면서 “처음이라 시행착오가 있었지만 익숙해지면 다양한 활용 방법을 고민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류호열도 3D 프린터가 없었다면 자신의 작품 ‘파이트(fight)’를 만들 수 없었다고 했다. 이 작품은 2005년 스케치한 뒤 수작업으로 구현할 수 없어 미뤄뒀던 것이다.

특히 미디어아트를 작업하는 작가들은 3D 프린터가 새로운 예술을 표현하는 도구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제일기획의 전시에선 3D 미니어처로 만들어진 난민들을 보지 못하고 지나가는 관람객의 모습을 통해 평소 주변의 난민들을 보지 못한 채 스쳐 지나가는 우리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으로 의미를 확장시켰다.

그림은 “예술적 표현의 가능성을 넓혀주는 데 도움이 됐다”면서 “앞으로 미디어아트를 하는 사람들에겐 3D 프린터를 사용하는 게 자연스러운 일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과제는 3D 프린터에 대한 부정적 시각을 깨는 것이다.

미술계 관계자는 “‘단 하나뿐’이라는 미술작품이 갖고 있는 희소성의 가치를 깬다는 점에서 과거 판화와 사진도 예술적으로 인정을 받지 못하는 어려움을 겪었다”면서 “3D 프린터도 그런 점에서 미술계 반발을 살 것”이라고 강조했다.

작품의 질이 떨어진다는 편견도 넘어야 할 산이다.

서윤경 기자 y27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