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간 평생교육원에서 국가공인시험 감독관으로 일했던 남모(67) 할아버지는 2년 전 은퇴할 당시 눈앞이 캄캄했다. 서울 강남에서 20여년간 학원을 운영했던 교육 전문가였지만, 직장을 그만두니 먹고 살길이 막막했다.
그때 노인인력개발센터 직원이 반려동물 얘기를 꺼냈다. 반려동물 장례를 대행해주는 서비스가 노인 취업에 유망하다는 설명이었다. 그는 지난해부터 반려동물 상조업체인 A사에서 의전팀장으로 일하며 장례절차를 총괄하고 있다. 4일 인천 계양구 서운동의 사무실에서 만난 남 할아버지는 “나도 강아지를 계속 길러왔기 때문에 동물을 가족처럼 생각하는 이들의 심정을 잘 안다”며 “사체를 품에 안고 슬퍼하는 사람들이 장례가 끝난 뒤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고 할 때마다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노인 일자리 창출의 대안으로 반려동물 사업이 떠오르고 있다. 바쁜 직장인들을 대신한 반려동물 돌봄 서비스 영역이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고, 반려동물 관련 서비스가 은퇴 노인들에게 적합하다는 이유에서다. 특히 남 할아버지가 근무하는 반려동물 장례서비스는 보건복지부 산하 노인인력개발원이 2011년 처음 시행한 ‘노인 일자리 아이디어 공모전’에서 최우수상을 받았다. 통계청 역시 지난 1월 ‘2014년 블루슈머(bluesumer) 보고서’에서 반려동물 용품 및 장례서비스 사업을 6대 유망 분야 중 하나로 꼽았다.
A사의 경우 업체대표 등 일부 관리직을 제외하면 직원의 대부분인 11명이 60세 이상 노인으로 구성돼 있다. 2012년부터는 고령자 친화기업으로 지정돼 보조금 3억원과 함께 3년간 경영관리나 실적관리를 받고 있다. 고령자 친화기업이란 양질의 노인 일자리 창출 차원에서 직원의 70% 이상을 60세 이상 노인으로 채용하면 정부가 각종 지원을 해주는 제도다. 노인인력개발원 관계자는 “지난해 기준 42개 기업이 고령자 친화기업으로 지정돼 1118명의 노인이 채용됐다”며 “월평균 급여도 73만원으로 정부지원 일자리의 월평균 급여 20만원보다 훨씬 높다”고 설명했다. A사의 경우 각종 수당을 포함하면 월평균 급여가 100만원대 중반까지 올라가 채용 시 경쟁률도 6대 1가량 된다고 한다.
이 회사 콜센터팀에서 일하는 전모(67) 할머니도 서울의 여러 구청에서 30년간 보건의료 분야를 담당했던 ‘전문가’다. 그는 “처음 전화를 받을 때는 당황해서 말이 잘 안 나오기도 했지만 ‘아가를 편안하게 해 달라’는 이들을 볼 때마다 내가 중요한 일을 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업체 측은 주로 대학과 업무협약(MOU)을 맺고 장례지도학과 전공 교수를 초빙해 장례지도사 교육을 하고 있다. A사 관계자는 “노인들은 동물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 반려동물 장례를 비롯한 돌봄 서비스에 적합하다”고 말했다.
지난해 8월에는 대한노인회에서도 반려동물사업단이 별도로 꾸려졌다. 반려동물사업단은 서울시 등 여러 지방자치단체와 협의해 지역별로 반려동물복합센터를 건립할 계획이다. 조영두 대한노인회 반려동물사업단장은 “애견카페와 미용실, 초등학생 체험장 등 반려동물 사업은 확장 가능성이 무한하다”며 “노인 일자리를 늘리는 데 적지 않은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백상진 기자 sharky@kmib.co.kr
[기획] 반려동물 마지막 길까지 노인 정성으로 배웅한다
입력 2014-08-05 03: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