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태로운 뮤지컬 산업] (上) 넘치는 공급

입력 2014-08-05 02:13
중대형 뮤지컬 기획사들이 경영의 어려움을 호소하는 가운데 영화, 음악 등을 제작해온 엔터테인먼트사들이 새롭게 뮤지컬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공연계가 가뜩이나 불황에 허덕이는 상황이라 공급 과잉이 심해질 것이라는 우려가 높다. 사진은 현재 공연중인 뮤지컬 ‘브로드웨이 42번가’의 한 장면. CJ E&M 제공

경기의 영향을 가장 최전방에서 받는 것이 문화 산업이다. 그 중 관객과 얼굴을 맞대고 만나야 하는 공연계는 경기 불황과 지난 4월 발생한 '세월호 참사' 여파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본보는 2편의 시리즈로 공급 과잉 문제와 기형적 구조 등 기로에 선 뮤지컬 산업의 현주소를 짚어본다.

“제작사가 스스로 자제해야 하는 상황이에요. 근데 회사를 멈출 수는 없으니까 계속 새 작품을 올리고 있고…. 공연계는 지금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상황이죠.”

최근 인터뷰를 진행한 한 대형 뮤지컬 제작사 대표는 이같이 말했다. ‘답이 안나온다’는 한탄 섞인 이야기를 털어놨다.

이 같은 업계 상황은 지난 달 29일 서울 중구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뮤지컬 ‘두 도시 이야기’를 보기 위해 모인 1500여 관객들이 공연 시작 10분 전에 통보 받은 황당한 공연 취소 소식으로 다시 한번 주목을 받았다. ‘두 도시 이야기 사태’는 스태프와 배우들의 임금 체불이 그 원인인 것으로 알려졌다.

◇공연계에 드리운 어둠의 그림자=공연계의 불황은 어제 오늘 일만은 아니다. ‘세월호 참사’로 불황에 속도가 붙었을 뿐이다. 국내 뮤지컬 업계 관계자들은 그 시점을 2011년으로 짚는다. 지난해 국내 뮤지컬 작품 수는 아동극과 재공연을 포함해 2500개를 넘어섰다. 2011년 2000개를 넘어선 이후에도 2년 만에 또다시 25%의 성장률을 기록한 것이다. 2001년 라이선스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이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킨 뒤 ‘산업’으로 자리 잡은 뮤지컬 시장은 지난 10년 동안 1000억원대에서 3000억원대로 커졌다.

문제는 관객층이 시장 성장 속도대로 늘지 않았다는 것이다. 국내 최대 티켓 예매 사이트 인터파크에 따르면 관객층은 지난 10년간 큰 차이가 없었다. 여전히 20∼30대 여성이 90% 가량을 차지한다.

정확한 관객 수 통계가 없을 만큼 초대권이 남발되고 있는 것도 문제다. 배경에는 ‘높은 티켓값’이 한몫한다. 티켓값이 비싸 관객이 늘지 않고, 관객을 많이 모으기 위해 개런티가 비싼 배우들을 무대에 세우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어려움에 직격탄을 맞은 것은 중형 뮤지컬 제작사다. 지난 6월 뮤지컬 ‘스프링 어웨이크닝’ ‘쓰릴미’ ‘웨딩 싱어’ 등 장르 뮤지컬을 제작해 온 중형제작사 ‘뮤지컬 해븐’이 워크아웃을 신청했다.

‘두 도시 이야기’의 제작사인 비오엠코리아도 2010년 설립돼 한창 사업을 키워가고 있는 중이었다. 두 사례만 봐도 뮤지컬 시장의 침체가 위험 수준에 다다랐음이 드러난다.

◇뮤지컬 시장의 지각 변동…“성장통 겪고 있는 중”=기존 뮤지컬 시장을 이끌었던 중대형 기획사들이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는 상황에서 최근 뮤지컬 제작 사업에 뛰어들고 있는 후발 주자들이 하나 둘 생겨나고 있다. 영화, 가요 등 타 분야의 엔터테인먼트 사업을 진행해 온 경험을 토대로 시장에 진입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겨울 가수 김광석(1964∼1996)의 노래로 완성된 주크박스 뮤지컬 ‘디셈버’는 영화 ‘변호인’의 배급사로 잘 알려진 뉴(NEW)가 제작했다. 지난해 초연된 뮤지컬 ‘공동경비구역 JSA’의 경우 SK행복나눔재단이 모태인 우란문화재단이 제작했다.

올 여름에는 국내 최대 연예기획사 SM엔터테인먼트가 자회사 SM C&C를 통해 ‘싱잉 인 더 레인’을 제작했고 자사 아이돌 가수들을 대거 출연시켰다. 김준수(28)와 정선아(30)등 현 뮤지컬 시장에서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 배우들이 소속돼 있는 씨제스 엔터테인먼트는 현재 공연중인 뮤지컬 ‘드라큘라’의 제작사로 이름을 올렸다.

특정 공연과 배우들을 관리하는 기획사가 손을 잡게 되면 출연자들의 개런티는 상승할 수밖에 없다. 뮤지컬 시장에 참여자가 많아지는 것을 환영하는 목소리와 함께, 과열화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원종연 순천향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현재 뮤지컬 시장은 성장통을 겪고 있다”며 “시장을 키우려는 노력과 함께 티켓값을 낮춰 대중화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뮤지컬 제작에 뛰어들고 있는 신생 제작사들의 경우 스타 1인을 내세워 후광을 보겠다는 생각을 버리고 시장 분석 등을 통한 장기적인 안목을 가져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김미나 기자 min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