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당 이대론 안된다-(하) 이념논쟁에 등돌리는 지지층] 10여년간 중도·진보 오락가락…

입력 2014-08-05 02:24 수정 2014-08-05 14:46

야당은 지난 10여년간 중도와 진보 사이에서 오락가락하기만 했다. 그 사이 야당 지지층은 실망했다. 당권이 바뀌거나 선거 때마다 단골로 등장했던 ‘우클릭·좌클릭’ 논란은 비생산적인 이념논쟁으로 비쳐질 뿐이었다. 야당이 이념논쟁으로 시간을 허비하는 사이 민심은 “도대체 정체성이 뭐냐”고 물었다. 새정치민주연합의 개혁은 이 같은 악순환을 끊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흔들리는 제1야당의 정체성=18대 대선 패배 후 지난해 5·4전당대회를 통해 당권을 잡은 ‘김한길 체제’는 중도 깃발을 내세웠다. 총·대선에서 좌클릭해 패했다는 비판이 일자 나온 처방이었다. 중도강화는 7·30재보선 패배로 막을 내린 ‘안철수·김한길 투톱 체제’에서도 이어졌다. 지금까지 모습대로라면 향후 새정치연합에서는 좌클릭이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사실상 보수 단일세력으로 뭉친 여권와 달리 야권은 중도에서 진보까지 다양한 세력의 연합체다. 색깔이 다른 세력이 모여 선거를 치러야 하니 어쩌면 정체성 논란이 당연한 측면이 있다. 그러나 문제는 정체성과 이를 뒷받침하는 정책들이 손바닥 뒤집듯 바뀐다는 점이다. 지난 17대 대선 패배 직후인 2008년 민주당은 강령에 ‘중도개혁주의’를 넣었고, 이듬해엔 ‘뉴민주당 플랜’을 발표했다. 열린우리당의 몰락과 대선 참패로 당이 위기에 처하자 우클릭을 택한 것이다.

하지만 2010년 10·3전당대회에서는 진보적 주제인 ‘보편적 복지’라는 말이 강령에 들어갔다. 앞서 넉 달 전인 6·2지방선거에서 ‘무상급식 공약’으로 선거에서 승리한 분위기가 강하게 반영된 결과였다. 야당은 이후 각종 ‘무상 시리즈’ 드라이브를 걸었다. 그러나 2012년 총·대선에서 연패했고, 진보라는 말은 쏙 들어갔다. 올해 3월 새정치연합 창당 이후엔 ‘보편적 복지와 선별적 복지의 조합’이라는 중도적 용어가 등장했다. 과거 열린우리당 시절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추진했다가 2012년 총선을 앞두고는 한·미 FTA 재검토를 내세운 것도 논란을 부채질했다.

이현우 서강대 교수(정치외교학)는 4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선거 중심으로 단기적 이해관계에만 얽히다 보니 정당이 추구하는 목표에 대한 일관적 태도를 보여주지 못했다”며 “야당 정체성에 대해 국민들이 확신을 가지지 못한다”고 말했다.

◇미·영 정당들의 접근법은…전략적 고민 필요=야당의 중도·진보 논쟁은 대부분 ‘논쟁 촉발→집토끼·산토끼 논쟁→계파 싸움으로 변질→지지층 이반→여당의 틈새공략→야당 자멸’이라는 흐름을 보였다.

미국 민주당이나 영국 노동당의 경우처럼 당 가치와 노선을 시대 변화에 맞춰 재정립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안병진 경희사이버대 교수(미국학)는 “영국 노동당은 노조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모델을 탈피해 나갔고, 미국 민주당은 뉴딜 시대의 패러다임을 21세기에 맞게 넘어섰다”고 평가했다. “미국에서는 그 결과가 클린턴과 오바마 대통령”이라고 안 교수는 설명했다.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전략가와 전략그룹도 요구된다.

그러나 현재 야당은 총·대선에서 승리할 수 있는 전략적 밑그림을 그리지 못한다는 지적이 많다. 계파적 이해관계에 묶여 전략가를 양산하지 못하는 한계점도 명확하다. 정체성 논란이 부각되는 것도 큰 틀에서 볼 때 전략의 부재로 볼 수 있다는 비판이다.

엄기영 최승욱 기자 eo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