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8월이면 일본에 시선이 쏠린다. 광복절 영향일 것이다. 가까우면서도 먼 나라, 일본과의 관계는 현재 매우 악화된 상태다. 박근혜정부가 들어선 지 1년 반이 다 돼가지만 아직 한·일 정상 간 만남은 요원하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거침없는 우경화 행보가 주요한 원인이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등 돌린 채 지낼 순 없는 노릇이다. 양국이 협력해야 상호 이익이 되는 분야들이 상존하기 때문이다.
어떻게 해야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을까. 2년 전까지 외교통상부 동북아국장으로 한·일 관계 실무를 총괄하다가 현재는 동서대학교 국제학부에 재직 중인 조세영 특임교수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지금까지의 한·일 관계사(史)를 정리 또는 진단해 달라.
“‘제도 피로’라는 표현을 쓰고자 한다. 1965년 국교정상화가 이뤄진 지 거의 50년이 지나면서 피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는 얘기다. 한·일 관계 버전 1.0이 2.0으로 이행돼야 하는데 새로운 것이 보이지 않아 진통을 겪고 있는 시기라고 할 수 있다. 냉전기에 수립된 한·일 관계 1.0은 안보와 경제라는 두 가지 기둥을 갖고 있다. 안보는 반공(反共)을 이념으로 한 한·미·일 공조를, 경제는 경제 선진국인 일본에의 의존 등을 의미한다. 그러나 냉전이 붕괴되고 우리나라의 경제가 발전하면서 접착제 역할을 하던 안보와 경제, 두 기둥의 역할이 한계에 봉착하게 됐다. 새로운 접착제가 필요한데, 아직까지 안 보여 어려움에 빠져 있는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양국 관계가 꼬인 데에는 아베 총리의 책임이 큰데.
“맞는 말이다. 하지만 아베가 아니었더라도 모순은 나타났을 것이다. 아베는 2006년에 이어 두 번째로 총리에 오른 인물이다. 처음 총리를 할 때부터 일관된 흐름이 있다. ‘전후체제로부터의 탈피’가 핵심이다. 교과서 왜곡, 야스쿠니 신사 참배, 집단자위권 행사를 위한 헌법 해석 변경, 일본군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 부인 등은 2006년부터 조짐이 있었다. 돌이켜보면 일본은 패전국임에도 전쟁 책임을 거의 지지 않았다. 군대를 포기한다는 평화헌법으로 인해 국제사회로부터 용납 받은 것이다. 그런데 지금 군대를 갖고 있는 다른 나라처럼 ‘보통국가’가 되겠다고 나서고 있다. 이를 원활히 추진하려면 주변국의 우려를 불식시키는 일을 동시에 진행했어야 했다. 하지만 아베는 퇴행적 역사인식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그럼에도 아베는 자신이 옳다고 믿겠지만, 외교는 상대가 있는 법이다. 외교에서 자신만의 신념이나 생각은 의미가 없다.”
-일본 국내 여론은 어떠한가.
“집단적자위권 행사를 위한 길로 들어서자 아베 지지율이 크게 떨어졌다는 보도가 있다. 하지만 반대 목소리의 위력이 크지 않다.”
-그래서 아베가 밀어붙이는 건가.
“그 외에도 일본 국내적으로 아베의 힘은 강하다. 우선 경제지표가 좋다. 9000엔 정도이던 일본 닛케이평균주가가 1만5000엔대로 엄청 뛴 것이 대표적 사례다. 20년 장기 침체의 늪에서 벗어나고 있다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아울러 무기 수출을 가능케 하고, NSC(국가안전보장회의)를 만드는 등 집권 이후 실행한 굵직굵직한 일도 많다. 정치적으로는 자민당 내에 경쟁자가 없고, 야당은 지리멸렬한 상태다. 2006년의 아베가 아니다. 완전히 환골탈태했다. 한·일 관계 역시 호락호락하지 않을 것이다.”
-일본의 집단적자위권에 대한 생각은.
“집단적자위권에 대한 헌법 해석을 변경한 것은 전후 일본 역사에서 큰 획을 그은 사건이다. 집단적자위권이 없는 일본과 집단적자위권을 확보한 일본은 다를 수밖에 없다. 동북아 안보에서 일본이라는 변수는 거의 없었으나 이제는 중요한 변수로 여겨야 한다. 2차 방정식이 3차 방정식으로 바뀐 것이다. 우리 국민들은 ‘역사인식이 바뀌지 않은 일본의 군국주의를 용인할 수 없다’고 규탄하고 있다. 그러나 그런 수준의 대응으로는 미흡하다. 3차 방정식을 어떻게 풀어야 하는지 복잡하게 사고하면서 접근해야 한다. ‘군국주의 불용’은 일종의 ‘사고 정지’다. 디테일에서 해야 할 게 많은 상황인데 ‘나쁜 놈’이라고 욕하고 끝내서야 되겠는가. 비판하더라도 우리가 활용해야 할 점은 없는지를 포함해 냉정하게 종합적으로 살펴봐야 할 때가 됐다고 본다. 오피니언 리더들이 깊이 있게 논의하고, 공론화해 안보정책을 구체화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일본과 중국의 무력 충돌 가능성은 있다고 보나.
“역사적으로 볼 때 우발적인 충돌이 뜻하지 않게 확대되는 경우가 왕왕 있었다. 그래서 지금의 일본과 중국도 우려스럽다. 말로는 무력 충돌을 바라지 않는다고 하지만 사소한 부주의로 인해 무력 충돌로 확대될 수 있다. 청일전쟁의 사례도 있다. 우리나라는 그 중심에 위치해 있다. 경각심을 갖고 바라봐야 한다. 우리 정부는 중·일 양국을 화해시키는 역할을 모색하는 게 바람직하다. 강 건너 불구경 하듯 하면 안 된다. 예를 들어 한·중·일 3국 정상회담 재개를 꼽을 수 있다. 우여곡절을 거쳐 2008년부터 해마다 3국 정상회담이 열렸으나 지난해 열리지 못했다. 우리나라와 중국을 자극한 아베가 원인을 제공했다. 올해도 개최되지 못하면 3국 정상회담 자체가 유명무실하게 될지도 모른다. 중국이나 일본이 3국 정상회담 개최를 위해 총대를 메기는 어려울 것이다. 우리나라가 촉매제 역할을 할 수 있다. 과거사 문제 등 민감한 현안은 배제하고, 약간 한가한 3국의 공동 관심사를 논의하면 가능할 것이다. 현안을 덮고 가자는 취지가 절대 아니다. 한·미·일 정상이 헤이그에서 만난 것처럼 한·중·일 회담도 열려야 한다.”
-한·일 양국 정상회담이 조속히 개최돼야 한다는 주장이 있는데.
“일본은 ‘박근혜 대통령은 외국에 나가 일본에 대한 불만을 얘기하지 말고 아베의 눈을 직접 보고 얘기하라’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이를 듣는 제삼자는 ‘대한민국이 너무한다’는 생각을 갖게 되지 않겠나. 우리 국내에서도 생각이 다를수록 양국 정상이 만나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그러나 정상은 개인과 다르다. 정상이 만나 접점을 찾지 못한 채 충돌하면 양국 관계가 더 어려워질 수 있다. 그럴 거면 안 만나느니만 못하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협의하기 위한 국장급 채널이 가동 중이다. 국장급 접촉에 이어 차관보급, 차관급, 그리고 장관급 접촉 등 정상회담 이전에 모든 외교 채널을 가동해 입장차를 좁혀 나가는 게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해법은 없나.
“양국 관계 정상화의 입구에 있는 최대 현안이 위안부 문제다. 지금까지 20여년 동안 이것저것 모두 시도해봤기 때문에 해법 마련이 어렵다. 열쇠는 피해 당사자들의 납득 여부일 것이다. 그런데 그 조건이 일본이 보기엔 좀 까다롭다. 일본의 법적 책임이 핵심일 듯한데, 일본이 단기간에 이를 수용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따라서 정부는 섣부른 외교적 타협을 하지 말아야 한다.”
-일본이 ‘고노 담화’ 검증 결과를 내놓았는데.
“경악과 허탈을 느꼈다. 보고서가 25쪽에 달한다. 일종의 위안부 백서다. 고노 담화만을 다룬 게 아니다. 보고서에는 양국 실무자, 장관, 정상 간 대화 내용도 포함됐다. 현재진행형인 사안에 대한 발언을 일방적으로 전부 공개하는 법이 어디에 있나. 굉장히 불행한 일이다. 또 보고서에는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을 뒷받침하는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다는 내용이 두 차례 나온다. 그러면서 아베 정부는 ‘고노 담화 지키기’라고 주장한다. 궤변이다.”
-양국 정부가 관계 개선을 위해 신경 써야 할 점은.
“한·일 관계가 포퓰리즘에 휩싸이지 않아야 한다. 또 선거를 앞둔 정당들을 비롯해 정치권 압력에도 휘둘리지 말아야 한다. 단기적으론 양국 국민들 감정이 더 이상 악화되지 않았으면 한다. 수백만 명이 상호 방문하고, 노래와 드라마 등 깊이 있는 교류가 이어지다가 안타깝게도 앙금이 깊어져버렸다. 양국 정부와 정치권이 양국 국민들 감정의 골을 깊게 만드는 일은 자제해야 한다.”
-일본의 독도 도발에 대한 대응은 어떠해야 하나.
“유소작위(有所作爲)하되 과유불급(過猶不及)해야 한다. 필요할 때는 적극적인 조치를 취하되 지나치면 미치지 못한 것과 같기 때문에 신중해야 한다는 얘기다. 우리가 독도를 실효적으로 지배하고 있으므로 국제분쟁지역화하는 건 좋지 않다.”
-일본 정부에 각별히 주문할 게 있다면.
“청구권협정이 완벽한 것이라는 집착에서 벗어나야 한다. 일본은 1965년 청구권협정이 과거사 문제 보상에 관한 모든 것을 처리한 완전무결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러나 어떤 조약이나 협약도 완벽한 것은 없는 법이다. 당시 청구권협정의 해결 범위에 처음부터 포함되지 않았던 사안이 있을 수 있다. 그 대표적인 게 일본군 위안부 문제다. 청구권협정은 양국 간의 재정적·민사적 채권채무 관계를 정리하는 성격의 협정이기 때문에 반인도적 불법행위에 해당하는 위안부 문제는 청구권협정의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고 봐야 한다. 따라서 일본 정부가 청구권협정이 위안부 문제를 포함해 모든 문제를 해결한 것이라는 집착, 즉 청구권협정이 완벽한 것이라는 집착을 버려야 비로소 한·일 관계의 실타래가 풀려나갈 수 있을 것이다.”
-일본 지도자들의 과거사 반성도 일관성이 결여돼 있는데.
“일본에서는 한국에 대해 ‘언제까지 반복해 사과를 하라는 것이냐’는 비판이 있다. 일본이 1998년 파트너십공동선언이라든지, 2010년 강제병합 100년에 즈음한 총리 담화 등을 통해 과거 역사에 대한 반성과 사죄를 표명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 후 일본의 책임 있는 자리에 있는 정치인들로부터 그에 부합하지 않는 발언들이 계속 나오는 것이 문제다. 한국 입장에서 보면 일단 사죄와 반성을 표명해 놓고 나중에 엉뚱한 발언이 계속 나오는 데 대해 피로감을 느끼고 있다. 책임 있는 정치 지도자들이 공적으로 지켜야 할 역사인식의 가이드라인 같은 것을 일본이 만들 필요가 있다.”
-최근 우리 대법원이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관련 기밀문서를 공개하라고 판결했다. 2012년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파문의 책임을 지고 외교부 동북아국장에서 물러난 당사자로서 이에 대한 견해는.
“법원의 판결에 대해선 코멘트하고 싶지 않다. 다만 그 당시 국민들의 공감대가 외교에도 중요하다는 교훈을 얻었다. 우리나라는 20여개 국가와 정보보호협정을 맺고 있다. 폴란드 등 사회주의권 국가와도 체결했다. 정보보호협정은 대단한 군사비밀을 주고받는 협정이 아니다. 우리 정부에서는 비밀을 이렇게 분류하고 있다는 걸 상대국에 알려줘 민감한 정보를 교환해도 무리가 없겠구나 라는 인식을 상호 심어주는 초보적인 단계의 협정이다. 상대국에 기밀을 줄까말까 하는 문제는 그 후에 케이스별로 결정하면 된다. 그런데 마치 곧바로 일본과 군사기밀을 주고받게 되는 것으로 잘못 알려지면서 여론이 악화돼 협상 창구였던 동북아국장으로서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 지금도 나쁘지 않은 결정이었다고 생각한다. 자유롭게 살고 있는 현 상태에 만족한다. 한번 사는 인생 아닌가.”
조세영 교수는… 10여년 駐日 대사관에서 근무한 일본통
1984년 외교통상부에 들어간 뒤 10여년을 주일 대사관에서 근무한 일본통이다. 김영삼·김대중정부 때 대통령 일본어 통역을 담당하기도 했다. 2011년 8월부터 외교부 동북아시아국장으로 재직하다가 이듬해 4월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체결 파동 때 실무총책으로서 책임을 지고 사임해 29년의 외교관 생활을 마감했다. 현재는 동서대 국제학부 특임교수이며, 저술 활동에 주력하고 있다. △외교부 동북아통상과장 △주중 대사관 경제참사관 △주일 대사관 공사참사관 △외교부 동북아시아국장 △동서대 특임교수
김진홍 수석논설위원 jhkim@kmib.co.kr
[인人터뷰] 꽉 막힌 韓·日관계 돌파구는 없나… 조세영 동서대 특임교수에 듣는다
입력 2014-08-06 04: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