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윤종빈] 영·호남 지역장벽 깨려면

입력 2014-08-05 02:55

7·30재보선의 최고 승자는 새누리당도 권은희도 아니다. 지역주의 장벽을 깨뜨린 새누리당 이정현 당선인이다. 19년 만에 그의 ‘3전4기’ 도전이 결실을 맺었다. 지역 발전을 향한 그의 열정과 진정성은 순천·곡성 유권자의 마음을 움직였고 누구도 예상 못한 대이변을 연출했다. 이런 ‘이정현 현상’은 진정한 의미의 ‘새 정치’로 국민에게 벅찬 감동을 주고 있다.

지역주의는 그 자체만으로 문제가 될 수 없다. 특수한 역사, 인종, 언어를 배경으로 지역의 고유한 이익을 주장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주지하다시피 영국 캐나다 이탈리아 등 해외에서도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현상이다. 그러나 우리의 지역주의는 독특하다. 특정 지역을 기반으로 한 맹주와 정당을 맹목적으로 지지하고 상대방을 무조건적으로 배척한다. 따라서 정상적인 정당정치의 발전을 가로막았다.

1987년 민주화 이전 우리 선거를 좌우했던 ‘민주 대 반(反)민주’ 쟁점은 1990년대 이후 지역주의로 대체되었다. 3김(金)과 정치권은 선거 승리를 위해 지역감정을 자극했고 ‘지역’ 쟁점은 정당, 이념과 중첩되어 더욱 일그러진 모습이 되었다. 민주화 이후 모든 선거는 ‘영남·새누리·보수’ 대 ‘호남·새정치민주연합·진보’의 구도로 왜곡되었다. 선거가 끝난 후에는 한 치의 양보도, 타협도 없는 극단적 대결의 정치로 둔갑해 한국정치를 퇴보시켰다. 결국 지역주의는 정책 중심의 정당정치 성장을 방해했고 다수의 일방적 밀어붙이기와 소수의 발목잡기만을 남겼다.

지역주의 장벽을 허물기 위해서는 제2, 제3의 이정현이 탄생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권한을 분산하고 책임을 공유하는 정치권력 구조를 만들어야 하지만 이는 헌법 개정이 필요한 중장기적인 과제다. 단기적 처방으로 선거제도 개혁이 있다. 그러나 제도 개혁으로 우리의 기대를 충족하기 어렵다. 왜냐하면 현행 선거제도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것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정치권은 그들의 기득권을 빼앗는 정치관계법 개정에 쉽사리 동의하지 않는다. 상당수 전문가들이 지역구 의원과 비례대표 의원의 정수가 동일한 독일식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주장하고 있지만 현실적으로는 비례대표 의석을 늘리는 것이 불가능해 보인다. 선거구 수 축소에는 현역 의원들이 격렬하게 반대하기 때문이다. 또한 비례대표 공천의 투명성이 보장되지 않고는 여론이 동의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나마 단기적으로 실현 가능한 개선 방안으로는 전국을 권역별로 나눠 비례대표 명부를 작성해 호남에서 새누리당 비례대표 의원, 영남에서 새정연 비례대표 의원을 배출하는 것이다. 수도권, 충청권, 영남권, 호남권 4개 권역을 가정해 현 54명의 비례의석을 일률적으로 배분하면 권역별로 13.5개 의석이 배당된다. 만일 새누리당이 호남권의 정당투표에서 20%를 득표하면 약 3명의 비례대표 의원을 배출하게 된다. 여기에다 근소한 표차로 낙선한 지역구 후보를 구제하는 석패율제를 추가적으로 적용하면 시너지 효과를 얻는다. 그러나 비례대표 의원 정수를 대폭 늘리지 않고는 효과가 미약한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비례대표 의석을 늘려야만 양당 독점이 아닌 ‘제3의 지대’가 만들어져 극단적 대결정치의 완충 역할을 할 수 있다.

한편 한 선거구에서 2∼4인을 득표순으로 뽑는 중선거구제는 1990년대 초반 일본이 포기한 제도로 한 정당이 동일 선거구에서 여러 명을 공천하는 과정에서 파벌정치를 양산한다. 게다가 선거구가 커짐에 따라 선거비용이 상승하고 농촌 지역의 과소대표 및 소지역주의가 조장된다. 현재 기초의원을 중선거구제로 뽑고 있지만 새누리당과 새정연이 대부분의 의석을 나눠 갖고 군소정당이나 무소속 후보가 제대로 진입하지 못하고 있다. 즉, 중선거구제가 양당독점 구도와 지역주의를 전혀 깨지 못하고 있다.

영·호남의 장벽을 허무는 선거제도 개혁은 정치권의 기득권 포기 의지가 전제되어야 가능하다. 또한 한국정치사(史) 새로 쓰기에 동참하려는 유권자의 의식 변화가 필요하다.

윤종빈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