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헤지펀드社, 위기 처한 국채 싸게 사 “부채 액면가대로 상환하라” 소송 승소

입력 2014-08-05 02:35
아르헨티나가 지난달 30일 미국 헤지펀드와의 채무상환 협상 결렬로 13년 만에 다시 디폴트(채무불이행)에 빠졌다. 아르헨티나를 디폴트로 몰아넣은 헤지펀드는 ‘벌처펀드(Vulture fund)’다.

벌처펀드는 죽은 동물 시체를 뜯어먹는 독수리(vulture)에서 유래한 이름으로 부도 위기에 처한 기업의 채권이나 국채 등을 낮은 가격에 사들인 뒤 채무자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 더 많은 돈을 받아내는 헤지펀드를 말한다.

이번에 아르헨티나를 노린 벌처펀드는 ‘NML 캐피털’과 ‘아우렐리우스 캐피털 매니지먼트’로 13억3000만 달러의 채권을 보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비교적 작은 규모의 채권을 보유한 이들이 아르헨티나를 디폴트라는 수렁에 빠뜨리게 된 배경에는 2001년 발생한 1000억 달러 규모의 디폴트 후속 조치가 있다.

아르헨티나는 디폴트 선언 후 주요 채권자들과 채무조정 협상에 나서 2005년과 2010년 93%의 채권자와 기존 채권의 최대 75%가량을 탕감받는 데 합의했다. 당시 합의에는 “채무 조정에 참여하지 않은 다른 채권자에게 2014년 12월 31일까지 더 우호적인 지급 조건을 제시해서는 안 된다”는 조항이 포함됐다. 이 조항은 아르헨티나 정부가 다른 채권자들과의 협상에서 더 유리한 조건을 제시하면 이미 채무 조정에 합의한 채권자들도 같은 조건을 요구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NML 캐피털과 아우렐리우스 캐피털은 2005년과 2010년 합의안을 거부하고 아르헨티나 정부를 상대로 미국 법원에 부채 상환 소송을 제기했다. 이들은 아르헨티나 채권을 4800만 달러 정도에 사들였으나 소송에서는 액면가대로 13억3000만 달러를 상환하라고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법원은 벌처펀드의 손을 들어줬다. 아르헨티나가 이들과의 채무 상환에 합의하기 전에는 이미 채무 조정에 합의한 채권자들에 상환해야 할 돈을 지급하지 못하게 한 뒤 양측이 협상하도록 한 것이다. 하지만 벌처펀드 측은 아르헨티나가 받아들일 수 없는 요구를 고집해 결국 협상이 결렬됐다. 아르헨티나가 벌처펀드 요구를 수용하면 이미 채무 조정에 합의한 93%의 채권자들에게도 같은 조건으로 채무를 상환해야 하는데 이 경우 채무 규모는 적게는 1200억 달러, 최대 5000억 달러 수준에 이를 수 있다. 이는 아르헨티나 경제의 몰락을 의미한다. 결국 아르헨티나 정부로선 미국 헤지펀드들에 대한 채무를 갚지 않고 ‘기술적 디폴트’를 선언하는 것이 최선이었던 셈이다.

김재중 기자 j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