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우 때 하천을 건널 수 있는 정상적인 다리 하나도 없는 곳에 펜션과 야영장, 오토캠핑장이 난립해 일가족을 포함한 7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경북 청도군 운문면 신원리 삼계계곡 펜션을 찾은 7명이 3일 새벽 승용차를 타고 보를 건너다 계곡 급류에 휩쓸려 모두 숨졌다.
경남 김해에 사는 한모(46·여)씨와 딸 윤모(21)씨, 남동생 한모(38)씨를 비롯해 한씨의 올케(36), 5·2세 아들 2명, 윤씨의 직장 친구 박모(21·여)씨 등이 2일 찾은 삼계계곡은 오토캠핑장을 비롯해 100여개의 펜션과 야영장이 난립해 있는 곳이다.
3일 0시를 넘어서면서 태풍 나크리의 영향으로 비와 바람이 거세지고 하천 물이 불어나기 시작했다. 전날 오후 11시20분부터 청도 일대에는 호우주의보가 내린 상태였다.
한씨 일행은 고립될 것을 우려한 듯 새벽 2시가 넘어선 시각에 하천을 건너기로 했다.
목격자들은 한 남성이 오전 2시40분쯤 혼자 아반떼 승용차를 몰고 폭 10m, 길이 20∼25m인 보를 건너가본 뒤 일가족을 태워 다시 건너다가 봉변을 당했다고 입을 모았다. 운전자는 남동생 한씨로 추정된다.
지방도 69호선에서 신원천 건너편에 있는 야영장이나 펜션에 가려면 이곳 주민들이 잠수교라 부르는 보 형태의 콘크리트 구조물을 건너야 한다. 정상적인 다리가 아니어서 폭우가 내리면 피서객들은 고립될 수밖에 없다.
이곳에서는 1998년 8월 1일에도 밤새 내린 비로 계곡물이 불어나면서 피서객 100여명이 고립됐다. 당시 피서객은 불어난 계곡물을 건너지 못해 119구조대가 계곡 양쪽에 설치한 밧줄을 잡고 길을 건너야 했다.
2010년 7월 11일에도 폭우로 계곡물이 불어나 펜션 등에 머물던 피서객 45명이 고립됐다가 119구조대에 의해 대피했다. 3일 현재 이곳에 머물고 있는 나들이객 수백명의 발이 묶여 있다.
경찰 관계자는 “한씨 일행이 고립될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보를 건너다 사고를 당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정상적인 다리가 없는 곳에 펜션과 야영지가 난립하도록 방치하고 안전조치에 소홀한 지방자치단체와 업주들의 책임 문제가 지적되고 있다.
청도군 관계자는 “삼계계곡 하천에는 행락객 수천명이 오는데 태풍·폭우 때 개별적으로 안전조치를 취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태풍 나크리가 몰고 온 비구름의 영향으로 제주도와 남부지방에는 폭우가 쏟아졌다. 2일 밤 12시부터 3일 오후 2시까지 제주 윗세오름에 1448.5㎜의 비가 내렸고, 지리산(492.0㎜)과 전남 고흥(339.5㎜) 등도 많은 강수량을 기록했다. 기상청은 4일까지 남해안과 지리산 부근, 제주도 산간에 시간당 30㎜ 이상의 많은 비가 내릴 것으로 보고 있다.
청도=최일영 기자 mc102@kmib.co.kr
다리 하나 없는 계곡에 야영장·펜션 난립 ‘화 불렀다’
입력 2014-08-04 02: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