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기업 현금 쌓아둘수록 투자 효율성 떨어진다

입력 2014-08-04 02:41

재벌그룹들이 현금을 많이 쌓아두고 있을 경우 오히려 투자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왔다. 최경환 경제팀의 사내유보금 과세 방침에 대해 “충분한 자금이 있어야 투자도 제대로 이뤄질 수 있다”며 버티던 재계 주장과 상반된 것으로 주목된다.

강형철 서울시립대 경영학부 교수와 장하성 고려대 경영학부 교수는 최근 이 같은 내용을 골자로 한 ‘한국 대규모 기업집단의 내부자본시장에서의 그룹 현금보유 역할’ 보고서를 한국금융연구원에서 발간하는 금융동향에 실었다. 연구는 2001∼2010년 국내 그룹 계열사 7400곳을 표본으로 이뤄졌다.

보고서에 따르면 현금을 많이 보유하고 있는 그룹의 경우 계열사의 수익성이 그렇지 않은 그룹보다 높았다. 회사 사정이 악화되더라도 그룹이 보유한 풍부한 현금을 활용해 극복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렇게 지원된 돈은 투자로 이어지지 않았다. 강 교수는 “현금이 풍부한 그룹의 계열사는 수익성이 우수했지만 투자에 있어서는 아무런 연관성을 발견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현금 자산을 늘리는 것이 투자 기회를 포착하기 위한 측면도 있다는 재계 주장에 반하는 것이다.

투자 효율성은 오히려 악화됐다. 현금 보유가 많은 그룹의 비상장 계열사는 투자 효율성이 마이너스(-0.133)를 기록했지만 현금이 적은 그룹은 플러스(0.115)를 기록했다. 투자에 실패해도 그룹으로부터 지원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안일한 생각이 무리한 투자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반대로 현금이 넉넉지 않은 그룹의 계열사는 투자 실패 가능성을 최소화해야 하기 때문에 보수적으로 투자가 이뤄지고 있었다.

기업의 현금 보유 경향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전 세계적으로 확산됐다. 경제의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위험을 회피하고 투자를 꺼리게 된 것이다. 국내 10대 재벌이 보유한 현금 자산은 2006년 27조7000억원에서 2012년 123조7000억원으로 빠르게 불어났다. 그러나 이 돈이 사정이 어려운 계열사로 흘러들어가는 경우는 금융위기 이후 줄었다. 기업들이 전반적으로 투자를 회피하면서 자금 지원의 필요성이 줄었기 때문이다.

특히 현금 보유 수준이 총자산 대비 10%를 넘는 그룹(전체 그룹 평균은 5% 수준)의 경우엔 이런 사정이 더욱 심각하게 나타났다. 이들 기업의 자금 흐름을 분석한 수치는 -0.077로 통계상 의미를 갖지 못할 정도로 미미했다. 현금 보유 수준이 과도한 기업이 오히려 돈을 묶어두고 있다는 의미다. 그룹에 쌓여 있는 현금이 지배주주의 사적 이익으로 전용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는 대목이다. 보고서는 “그룹이 지나치게 많은 현금을 보유하게 되면 오히려 지배주주를 위한 과잉 투자로 이어질 가능성이 증가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세종=이용상 기자 sotong20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