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권도는 지난 2월 한글, 아리랑과 함께 한국을 대표하는 3대 브랜드로 선정됐다. 문화체육관광부는 1996년에도 한국의 10대 문화상징을 발표한 바 있지만 이번에 한류 문화의 첨병으로 이 3가지를 집중 지원하기로 했다. 태권도, 한글 그리고 아리랑이야말로 한국의 역동성과 정체성을 가장 잘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태권도는 우리나라 고유의 무도에서 출발해 이제는 전 세계에서 사랑받는 스포츠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2014년 현재 세계태권도연맹에 가입된 나라가 206개국이며 전 세계에서 태권도를 수련한 인구가 약 9000만 명에 이른다. 하지만 태권도가 무도나 스포츠를 넘어 문화 콘텐츠로서 적극적으로 활용되려면 아직도 가야할 길이 멀어 보인다.
태권도가 문화콘텐츠로 인식되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후반이다. 정부는 21세기의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는 문화콘텐츠 산업에 주목했다. 당시 할리우드 영화 ‘쥬라기 공원’의 수익이 현대자동차가 승용차 150만대를 판 것과 같다는 보도가 나오는 등 문화콘텐츠 산업은 정부의 지원 속에 빠르게 확산됐다. 태권도의 경우 1994년 IOC 총회에서 올림픽 정식종목으로 채택되며 스포츠로서 성취를 이뤄냈지만 종주국답게 인적 인프라를 활용한 산업화 및 상품화도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오게 됐다.
1990년대 후반 세계태권도문화축제가 열리고 태권도 만화나 캐릭터가 하나둘씩 나오기도 하지만 일반인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태권도가 문화콘텐츠로서 본격적으로 활용한 것은 2000년대 들어서부터다. 2001년 태권도를 소재로 한 TV 애니메이션 ‘기파이터 태랑’이 방영됐고 2002년 넌버벌(비언어) 퍼포먼스 ‘쇼 태권’ ‘태권 얍’ 등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2004년엔 영화 ‘돌려차기’ ‘클레멘타인’ 등이 개봉됐다. 다만 이들 작품들은 대부분 대중의 시선을 끌지 못한 채 얼마 뒤 잊혀지고 말았다. 세계 태권도의 총본산인 국기원의 김홍철 과장은 “초창기에 태권도를 문화콘텐츠로 활용하려는 시도가 실패로 끝난 것은 태권도를 영화나 공연, 만화, 애니메이션 등에 효과적으로 녹여내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일련의 시행착오에도 불구하고 태권도를 문화콘텐츠로 활용하려는 시도는 멈추지 않았다. 특히 공연계가 가장 활발한 편이었는데, 관광 상품으로 자리 잡은 넌버벌 퍼포먼스 ‘난타’의 영향이 컸다. 배우 출신 프로듀서 송승환이 제작한 ‘난타’는 레스토랑의 주방을 배경으로 요리사들이 도마에서 야채를 썰고, 음식을 만들고, 그릇을 정리할 때 나는 소리들을 퍼포먼스와 함께 풀어냈다. 이 과정에서 우리 전통의 타악 공연인 사물놀이와의 접목이 시도된 것이 특징이다. 1997년 초연된 ‘난타’는 이후 2000년 서울에 전용관을 마련하고 하루에 2번씩 상설공연에 들어갔다. 언어가 없어서 이해하기 쉽고 코믹한 이 작품은 외국 관광객의 필수코스가 됐으며 한때 전용극장을 4개까지 늘렸다.
태권도계에서 품새, 발차기, 격파 등을 선보이는 태권도 시범단의 활동은 공연적인 요소가 많은 것이 특징이다. 따라서 ‘제2의 난타’를 꿈꾸며 여러 단체들이 태권도를 소재로 한 넌버벌 퍼포먼스 제작에 도전했다. 2003년 초연된 ‘점프’는 태권도와 태껸을 포함해 동양무술을 활용한 넌버벌 퍼포먼스로 성공을 거뒀다. 무술 유단자 집안에 도둑이 들어와서 벌어지는 해프닝을 담은 이 작품은 ‘난타’를 벤치마킹했지만 코믹한 요소가 훨씬 많은 것이 특징이다.
이후 2005년 경기도문화의전당은 세계적인 넌버벌 퍼포먼스 ‘스노 쇼’로 유명한 러시아 연출가 빅토르 크라메르를 초청해 ‘더 문(The Moon)’을 제작했다. 이 작품은 이후 경기도문화의전당 산하 경기도립무용단에서 무용적인 요소와 한국적인 상징 등을 추가한 ‘태권무무 달하’로 계승돼 지금도 꾸준히 공연되고 있다.
대한태권도협회도 태권도 시범의 새로운 가치 창출을 위해 넌버벌 퍼포먼스 제작에 나섰다. 2006년 타악 솔리스트인 최소리 공연단과 손을 잡은 뒤 이듬해 ‘아리랑 파티’를 올렸다. ‘아리랑 파티’는 태권도, 타악, 한국 무용, 비보이 등을 비빔밥처럼 섞은 공연으로 최근 ‘탈’로 업그레이드됐다. 이외에도 태권도를 소재로 ‘타타 IN 붓다’ ‘태권 춤을 품다’ ‘혼’ 등 10여개의 작품이 최근까지 선을 보였다. 그러나 태권도를 소재로 한 이들 작품들은 대부분 완성도에서 아쉬운 부분이 많았으며 상업적으로도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탈’ 제작에 관여한 대한태권도협회 관계자는 “태권도를 소재로 한 공연들이 아직 일반 관객의 눈높이엔 미치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지만 해외에서 시범단과 다른 방식으로 태권도를 알리는 데는 도움이 된다”면서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와 MOU를 맺고 새로운 작품을 개발하는 등 또 다른 방법을 찾아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해 ‘점프’를 연출한 최철기 감독은 “그동안 태권도를 소재로 한 작품들이 대부분 실패한 이유는 태권도를 1차원적으로 내세웠기 때문이다”면서 “태권도 시범단이 선보이는 품새나 격파 등을 그대로 선보이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사실 태권도를 문화콘텐츠로 활용하려는 작업에 정해진 정답은 없다. 문화콘텐츠 산업에서 방법이나 수단은 창작자의 자유이기 때문이다. 다만 고객의 감수성을 자극해 공감을 이끌어내야만 성공했다고 할 수 있는데, 태권도를 소재로 한 작품 중에서는 아직 그런 경지에 도달한 경우는 거의 없었다.
그런데, 최근 지금까지와 다른 방식으로 태권도를 활용하는 움직임이 등장해 주목을 받고 있다. 1990년 태권도 시범단에서 출발해 지금은 엔터테인먼트까지 발을 넓힌 K-타이거즈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K-타이거즈는 지난해부터 아이돌 그룹 엑소의 ‘으르렁’ ‘중독’과 빅뱅의 ‘링가링가’의 커버댄스를 잇따라 선보여 폭발적인 관심을 끌고 있다. 아크로바틱·웨이브·브레이크댄스 등을 태권도에 접목시킨 K-타이거즈의 커버댄스는 ‘댄싱나인’이나 ‘스타킹’ 등 방송 프로그램에서 소개된 이후 일반 대중에게 태권도의 매력을 새롭게 알리고 있다.
안창범 K-타이거즈 감독은 “태권도에 대한 고정된 이미지를 깨고 싶어서 여러 작업을 해오던 중 K-Pop을 가지고 만든 것이 큰 주목을 받게 됐다”면서 “과거에는 이런 시도에 대해 상업적이라며 비난을 받았는데, 이제는 국내외에서 공연 요청이 많이 들어오고 있다”고 밝혔다.
K-타이거즈는 지난 2010년 엔터테인먼트 회사를 세워 단원들을 액션배우로도 키워내고 있다. 이 가운데 나태주와 태미는 태권도를 소재로 한국과 태국이 합작한 영화 ‘더 킥’(감독 프라차 핀카엡)에 주연급으로 출연했다. 그리고 나태주는 올해 휴 잭맨, 아만다 사이프리드 등이 출연하는 할리우드영화 ‘팬’(감독 조 라이트)에 전격 캐스팅돼 현재 촬영 중이다. 안 감독은 “태권도를 문화콘텐츠로 자리매김하기 위한 방법 가운데 하나가 스타를 배출하는 것이어서 엔터테인먼트에도 관심을 기울이게 됐다”면서 “태권도는 세계적으로 통용될 수 있는 콘텐츠이지만 앞으로는 지금과는 다른 방식의 지원과 투자가 필요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
태권도 ‘한류 문화콘텐츠화’로 갈 길 멀다
입력 2014-08-05 02: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