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권하는 CEO, 책 읽는 직장-SK텔레콤의 ‘T라이브러리’] 독서광 만든 社內 도서관

입력 2014-08-04 02:36
SK텔레콤 직원들이 지난 1일 서울 중구 을지로 SK텔레콤 T타워 18층 T라이브러리에서 책을 읽고 있다. T라이브러리에 있는 단행본 2만9000여권을 비롯해 보고서, 정기간행물 등 약 14만건의 자료를 직원들은 자유롭게 열람하거나 대출할 수 있다. 쾌적한 독서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시야를 가리지 않는 높이에 유선형의 책장을 배치했다. 김지훈 기자

새벽 5시. 여름이라 해가 길어졌어도 아직은 조금 어둑한 시각. 경기도 분당의 SK텔레콤 네트워크기술원 소속 박영준(37) 매니저의 하루는 이때부터 시작된다. 남들은 단잠에 빠졌을 시간에 잠을 깨 하루를 먼저 시작하는 건 출근 전 ‘책 읽는 한 시간’을 내기 위해서다. 그만큼 그는 책이 좋다.

최근 읽은 책은 ‘스토리텔링 애니멀’. 태고부터 인간이 이야기를 좋아한 이유에 대해 학문적으로 풀어낸 책이다. 직장에서 업무 계획을 보고할 때 스토리텔링 방식이 더 쉽게 받아들여진다는 걸 경험한 뒤 이 책을 찾았다. 사람들이 왜 스토리텔링에 열광하는지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서였다.

아침잠을 줄이고, 주말에도 책을 끼고 살다 보니 지난해 7월부터 지난달까지 1년 동안 그가 읽은 책은 260여권. 웬만한 사람은 엄두도 못 내는 분량이다. 다독 비결을 물으니 ‘습관의 힘’이라고. 그는 사내 도서관 ‘T라이브러리’가 독서습관을 만들어줬다고 했다.

T라이브러리가 뭐길래? 평범한 회사원을 독서광으로 만든 힘이 궁금했다. T라이브러리는 서울 중구 을지로 SK텔레콤 본사에 있다.



1인 독서테이블 갖춰…인기 만점

지난 1일 SK텔레콤 T타워 18층 T라이브러리를 찾았다. 297㎡(90평) 규모의 널찍한 공간은 마치 북 카페 같았다. 서가뿐 아니라 혼자 책을 읽을 수 있도록 스탠드를 갖춘 1인용 테이블도 있었다. 탁 트인 도심 전망을 볼 수 있게 시야를 가리지 않는 허리 높이의 낮은 책장도 눈길을 끌었다. 직원들은 책을 읽다가 커피도 마실 수 있었다.

도서관 운영 책임자인 경영전략실 최세인 매니저는 “양보다는 질을 지향한다. 임직원에 대한 폭넓은 분야의 식견 제공, 통신 전문성 강화 등을 목표로 한다”고 말했다.

박 매니저 얘기를 꺼내자 최 매니저는 “직원들의 책 욕심이 너무 많아 대출 총량을 10권으로 제한할 정도”라며 웃었다. 그러면서 “책 읽는 습관이 다들 ‘훌륭하다’”고 했다. 분야도 업무와 관련된 IT나 산업 트렌드뿐 아니라 철학 인문학 역사 등 다양하다고 전했다.



도서관 갈 필요 없이 클릭 한번으로

직원들은 회사의 도서관 운영 시스템이 책 읽는 습관을 키워줬다고 입을 모은다. 원하는 책을 사무실까지 배달해주는 곳은 어디에도 없을 것이라고 자랑한다. 온라인 도서 시스템을 통해 구매 신간 서적 등을 실시간 확인할 수 있고, 원하는 책을 예약하면 다음날 받을 수 있다.

서울 본사에 근무하지 않는 타 지역 근무 직원들에겐 필요한 문서들을 차량으로 배송해 주는 문서수발시스템을 활용하거나 지역 우체국과 연계해 책을 배송해 준다.

분당에서 근무하는 박 매니저도 이 문서수발시스템을 통해 본사 T라이브러리 책을 마음껏 빌려보는 것이다. 도서관에 책을 받으러 갈 필요 없이 사무실로 책이 배달되니 서울 본사에서 근무할 때보다 더 많이 읽게 되고 자연 습관이 만들어졌다고. 예전에 연간 100권 읽던 것이 최근엔 200권으로 늘어났다고 한다. 반납일이 가까워지면 문자 메시지로 알려줘 ‘마감효과’도 있다.

물론 아쉬움도 있다. 이용자가 많다 보니 대출 기간(신간 1주·구간 2주)이 짧다. 인기 서적의 경우 경쟁이 치열하다. 올 초 나온 ‘아마존, 세상의 모든 것을 팝니다’ ‘우리는 공부하는 가족입니다’ 등은 대기자가 20명을 넘었다. 박 매니저도 ‘우리는 공부하는 가족입니다’를 3개월이나 기다린 끝에 받았다.



묵은 책은 방출…새 정보를 채운다

T라이브러리에선 일반 도서실에서는 볼 수 없는 풍경이 있다. 보통 도서실이 ‘보관’의 개념이라면 T라이브러리는 ‘새로운 정보 제공’을 지향해서다. T라이브러리는 연간 2500만원 정도를 들여 단행본만 1500∼2000권을 구입한다. 정기간행물까지 더하면 총 도서 구입비는 6000만∼7000만원이나 된다.

이렇듯 매년 새로운 책을 구매하다 보니 오래된 도서를 과감히 정리하는 것도 필요하다. 그래서 연말이면 ‘책 나눔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소장 가치가 있는 책을 빼고 ‘도서 창고 대방출’을 하는 셈인데, 800권 정도가 행사 때 쏟아진다. 거래 방식도 독특하다. 직원들은 이 책을 돈으로 사는 게 아니라 자신이 가져온 책과 물물교환한다. 그렇게 해서 남게 된 책은 SK그룹에서 운영하는 행복한 도서관에 기증된다. 5년째 시행 중인 책 나눔 행사에는 매년 250여명이 참여한다. 기증하는 책은 300여권 정도다.

최 매니저는 “행사의 목적은 두 가지”라며 “한 번 읽어 묵히게 된 책은 필요한 사람과 나누고 기증하고 싶은 책은 기증하자는 것”이라고 전했다.

서윤경 기자 y27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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