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훈(45) 전도사는 목회에 뜻이 없었다. 목회자인 어머니의 영향으로 침례신학대를 졸업했지만 전도사로 봉사하는 데 만족했다. 1996년 미국 캘리포니아 침례신학대로 유학을 갔지만 여전히 목회에 대한 비전은 갖고 있지 않았다.
“신학을 공부했다고 무조건 목사가 돼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어요. 오히려 성경을 잘 알고 담임 목회자를 도울 수 있는 사람이 되면 하나님이 기뻐하실 것이라고 생각했죠. 영어 이름을 여호수아로 지은 것도 이 때문입니다. 모세를 잘 보조한 여호수아 같은 사람으로 살고 싶었거든요.”
전도사로 섬기며 미국 시민권도 얻었지만 그의 생각에는 변함이 없었다. 그러나 지난해 2월 교통사고를 겪으며 그의 삶은 송두리째 흔들렸다. 한 성도의 집에 다녀오던 길에 작은 교통사고를 당해 자동차 핸들에 가슴을 부딪쳤는데 병원에서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다친 가슴에는 별 문제가 없는데 신장에서 암이 발견됐다는 것이었다. 미국 의료보험이 없던 이 전도사는 한국으로 돌아와 수술대에 올랐다. 다행히 수술은 성공적이었다. 이 전도사는 이메일 인터뷰에서 “교통사고가 난 것도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한다”며 “신장암을 발견한 뒤 전도사로만 봉사하고자 했던 생각도 바뀌게 됐다”고 말했다.
치료를 끝내고 반 년 만에 돌아간 미국은 달라져 있었다. 그가 5년 동안 섬기던 교회가 분열돼 성도들이 뿔뿔이 흩어진 것이다. 한 성도는 아예 하나님을 떠나 살고 있었다. 그에게 다른 여러 교회를 소개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이 전도사는 지난해 9월 캘리포니아 풀러턴의 한 공원에서 이 성도의 손을 잡고 예배를 드리기 시작했다. 한마음교회의 시작이다.
“하나님께서 제게 ‘한 영혼도 네게 준 양이다’라고 끊임없이 말씀하셨어요. 공원에서 예배를 드리며 하나님이 제게 맡긴 영혼을 주께 인도하는 것이 제 사명이자 소명이라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이 전도사와 함께 공원에서 예배를 드리는 이들은 점차 늘어갔다. 지난 1월에는 한 성도의 도움으로 33㎡(10평) 규모의 작은 예배당도 마련했다. 최근 이 예배당의 계약이 만료됐지만 다행히 같은 건물 안에 다른 공간을 구했다. 현재 8명의 성도가 그곳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다. 이 전도사는 “예배당에는 강대상, 마이크, 기타, 의자 10여개가 전부”라며 “함께 식사를 하며 교제를 나누는 것도 어렵지만 하나님께서 모두 채워주실 것이라 믿는다”고 말했다.
이 전도사는 한마음교회를 시작할 때부터 하박국 2장 14절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의 영광을 인정하는 것이 세상에 가득함이니라”는 말씀을 묵상하고 있다. 이 말씀처럼 하나님의 뜻을 사회에 보여줄 수 있는 목회를 꿈꾸고 있다.
“어렵지만 한마음교회가 지역 사회의 빛이 될 수 있는 곳이 됐으면 합니다. 뒤늦게 미국으로 이민을 와 한국과 미국 어떤 곳에서도 적응하지 못하는 분들을 이끌어주고, 이들과 함께 지역사회에 봉사할 수 있는 교회를 만들겠습니다.”
진삼열 기자
[어려운 교회를 도웁시다-국민일보·세복협 공동캠페인] 미국 한마음교회
입력 2014-08-05 02: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