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년대 미국에서 프레온 가스를 이용한 냉각 기술이 개발됐다. 얼음을 대량 생산하는 공장이 등장했다. 텍사스에 사우스랜드란 제빙회사가 있었는데 1927년 한 종업원이 “얼음공장에서 우유와 달걀을 팔아보자”고 제안했다. 당시 식료품점은 이런 상품의 신선도를 유지하기 어려워 평일 저녁과 일요일엔 문을 닫았다. 커다란 얼음을 진열대 삼아 공장에서 우유 달걀 빵을 팔았더니 식료품점이 문 닫은 시간에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이를 사업화한 사우스랜드는 지금 ‘세븐일레븐’이 돼 있다.
편의점은 이렇게 생겨났다. 남이 안 파는 걸 판 것도 아니고 남보다 싸게 팔지도 않았다. 남이 영업하지 않는 ‘시간’을 공략해 돈 버는 데 성공했다. 세븐일레븐이란 이름부터 아침 7시∼밤 11시 영업시간을 뜻한다. 일찍 출근하고 늦게 퇴근하는 이들에게 소비할 기회를 제공하더니 아예 24시간 영업 체제로 굳어졌다. 자본주의에선 시간이 곧 돈임을 제대로 간파한 비즈니스다.
서울대 전상인 교수는 저서 ‘편의점 사회학’에서 세븐일레븐이 성공한 다른 요인으로 ‘프랜차이즈화’를 꼽았다. 사우스랜드의 29개 얼음공장·창고에서 시작된 세븐일레븐은 급속히 확산됐다. 직영 체제로 100호점 낼 때까지 25년이 걸렸는데 프랜차이즈로 전환하자 10년 만에 미국을 넘어 일본에 진출했다.
편의점이 일본과 대만을 거쳐 한국에 들어온 건 1989년이다. 서울 송파구에 세븐일레븐 올림픽선수촌점이 처음 문을 열었다. 25년이 흐른 지금 우리나라 편의점은 2만5000개에 달한다. 세계에서 인구 대비 가장 많다. 미국에선 냉장식품 판매로 시작됐지만 일본에선 오니기리(일본식 주먹밥), 대만에선 주류, 한국에선 담배를 유인상품으로 급성장했다.
이렇게 토착화하면서도 본질적인 두 가지, ‘24시간 영업’과 ‘프랜차이즈 방식’은 바뀌지 않았다. 편의점은 탄생 과정이 말해주듯 소비의 사각지대를 파고든 업종이다. 연중무휴 24시간 문을 열어 시간의 사각지대를 공략하고, 동네마다 촘촘히 가맹점을 내서 공간의 사각지대를 침투하며 거의 100년을 버텨왔다. 그런데 이 생존방식이 한국에서 문제가 됐다.
지난해 편의점 대기업과 가맹점의 ‘갑을 논란’은 한국 경제가 고성장을 멈춘 시점에 불거졌다. 우리나라 편의점은 세븐일레븐식 ‘이익 배분’ 프랜차이즈다. 가맹점이 매출 이익의 15∼35%를 본사에 로열티로 지불한다. 고성장기엔 소비가 계속 느니까 남는 게 있었지만 지금은 2만5000개로 매장을 불린 본사만 돈 버는 구조가 됐다. 잠 안 자고 돈 쓰려는 사람은 별로 없는데 계약에 묶여 24시간 영업해야 하고 수입은 더 줄자 가맹점주들이 분통을 터뜨렸다.
이런 편의점 사업에 신세계그룹이 뛰어들었다. CU·GS25·세븐일레븐이 90% 이상 시장을 장악한 터라 세 회사의 파이를 빼앗는 수밖에 없다. 이를 위해 가맹점에 24시간 영업을 강요하지 않고 로열티 대신 월회비만 받겠다고 선언했다. 편의점이 살아온 두 가지 방식을 바꾸겠다는 것이다. 갑을 논쟁을 피해 가자는 심산인지, 새로운 패러다임인지 아직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업계는 요동치고 있다.
편의점은 한국인의 첫 직장이자 마지막 직장이 돼가고 있다. 많은 청소년이 편의점 알바로 사회에 첫발을 내딛고 많은 중·장년이 노후를 의지하려 퇴직금 털어 편의점을 차린다. 신세계의 실험이 이런 직장을 ‘괜찮은 일터’로 바꾼다면 ‘편의점 사회학’에 챕터 하나 정도는 할애해야 할 듯하다.
태원준 사회부 차장 wjtae@kmib.co.kr
[뉴스룸에서-태원준] 신세계 편의점은 다를까
입력 2014-08-04 0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