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중반 오스트리아 빈 종합병원에서는 매년 수백 명의 임산부가 산욕열로 숨져 나갔다. 복부가 부어오르고 복합 농양과 고열로 사경을 헤매는 산모들을 보면서도 의사들은 원인과 치료법을 몰라 발만 동동 굴렀다. 1847년 병원에서 근무하던 29세 의사 제멜바이스가 끔찍한 미스터리를 풀기 위해 연구를 시작했다. 그는 우선 병원 내 두 개 병동의 산욕열 사망률이 다른 점에 주목했다. 의사가 운영하는 병동의 사망률이 산파가 운영하는 병동의 사망률보다 9배나 높았다. 그는 숨진 산모를 해부하고 매일 시신 안치소를 드나들며 해법 찾기에 매진했다. 하지만 별다른 소득을 얻지 못했다. 이 와중에도 산모들이 계속 숨지자 제멜바이스는 자괴감에 시달렸다.
그러다 중대한 사건이 발생했다. 시신 안치소에 근무하던 동료 의사가 손가락에 통증을 느끼다 산욕열로 사망한 것이다. 그는 산모들을 숨지게 한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의사들이 옮긴다고 확신했다. 의사 진찰 횟수와 산욕열 발생률이 비례한다는 점도 발견했다. 의사 병동의 사망률이 높은 점도 맞아떨어졌다. 제멜바이스는 동료 의사들에게 비누로 손을 씻으라고 주문했다. 효과가 있었다. 의사 병동의 산욕열 사망률이 2년 만에 10분의 1로 급감했다. 동료 의사들은 그러나 변화를 거부했다. 그는 반대론자에게 밀려 고국 헝가리로 돌아와야 했다. 그는 새 병원에서도 의사들에게 손을 씻으라고 요구했는데, 동료들이 제대로 따르지 않았다. 제멜바이스는 격분했다. 그는 유럽의 유명 의사들에게 편지를 보내 비난했다.
“산모들의 의사인 당신은 대량학살을 자행하고 있소. 산파와 의사들이 자행한 살인적인 행위, 즉 산욕열의 공범이오. 나는 하나님과 만천하에 당신이 살인자라고 선포합니다.”
그는 의사들의 더러운 손이 치명적인 살인무기가 될 수 있다는 내용의 책도 펴냈지만 이마저 혹평을 받자 편집증에 시달렸다. 제멜바이스는 점점 이상한 행동을 보였다. 그의 아내는 동료 의사들과 함께 그를 정신병원에 입원시켰다. 제멜바이스는 병원 감금 직후 산욕열에 걸려 숨지고 말았다.
에볼라 바이러스가 서아프리카 3개국에서 창궐하고 있다. 치료법조차 없는 상황에서 치사율이 최고 90%에 이르는 바이러스가 확산될까 전 세계가 떨고 있다. 최근 아프리카로 의료봉사를 떠나려던 국내 단체가 반대 여론에 밀려 계획을 철회했다고 한다. 비록 바이러스 발생국은 아니라고 하지만 혹시 모를 ‘손을 씻지 않는 의사들’의 우를 범하지 않게 돼 다행이다.
김상기 차장 kitting@kmib.co.kr
[한마당-김상기] 제멜바이스의 교훈
입력 2014-08-04 02: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