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포커스-이지용] 한·중·일 아이스브레이킹

입력 2014-08-04 02:54

중·일 갈등의 출구가 보이지 않는다. 설상가상으로 역사와 영토 문제를 둘러싸고 한·중·일 3국의 엉킨 실타래가 쉽게 풀릴 것 같지도 않다. 더 심각한 것은 역사와 영토 문제같이 현상으로 드러나고 있는 갈등의 근원에 보다 복잡한 각국의 국내 정치적 원인과 국제적 세력 경쟁이 놓여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정치적, 외교적 해법이 묘연하기만 하다. 문제의 해법을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

급하고 어려운 때일수록 돌아가라는 말이 있다. 국가 간 갈등의 정치외교적 해법이 쉽지 않은 상황에서는 사회적 수준에서 국민들 간 이해의 폭을 확대시킬 필요가 있다. 견고해 보이는 빙산을 물리적으로 깨는 것이 아니라 훈풍으로 녹이는 것이다. 한·중·일 3국 간 아이스브레이킹(얼어붙은 마음 녹이기)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국민들 간에 마음으로부터 서로를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해로부터 싹트는 마음은 논리를 형해화(形骸化)하는 효과를 종종 발휘한다. 이는 때로 나쁜 감정이 논리적 이성을 덮어버리는 것과 같은 방식이다. 사회적 수준에서 3국 국민들 간의 상호 이해를 증진시킬 방법은 어떤 것이 있을까. 방법은 다양하겠지만 여기서는 미디어를 통한 접근을 제안하고 싶다.

미디어의 파급효과에 대해서는 재론할 필요가 없겠다. 특히 지금까지 한·중·일 3국 방송사가 공동으로 기획한 다큐멘터리들은 3국 국민들 간 상호 이해 증진에 상당히 효과적이었다. 3국 간 정치적 갈등이 심화되고 있는 지금, 이와 같은 프로그램을 보다 많이 기획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3국이 함께 공감할 수 있는 다큐멘터리 프르그램의 주제는 매우 다양하다. 역사적으로 그리고 사회문화적으로 3국은 생각보다 많은 문화와 전통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자, 유교, 불교, 전통놀이, 음식, 음악, 건축 등 많은 삶의 양식들이 공통분모를 이루면서도 각자의 독특함을 가지고 있다.

현재 3국 간에 문제가 되는 역사 논쟁과 관련해서는 상대방으로부터 입은 피해에 초점을 맞추는 것을 가급적 지양하고 가해자로서, 그리고 피해자로서 받은 일반 민중들의 고통에 줌인(zoom in)하는 역사 다큐멘터리 프로그램도 구상해볼 수 있다. 사실 정치적 논리를 배제하면 많은 경우 가해국과 피해국 민중들은 모두 직간접적인 피해자들이다. 예를 들어 과거 일본제국 군인으로 참전했던 구 일본군 병사는 침략에 앞장선 가해자이자 동시에 총알받이로 전장에 섰다는 점에서는 그 또한 피해자일수밖에 없다. 역사의 상흔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면서 용서와 화해를 지향하는 프로그램도 생각해볼 수 있다.

‘귀환’ ‘방문’ ‘만남’ ‘회고’ 등의 단어 속에 시간과 삶의 무게를 짊어지고 온 사람들에게 지나간 시간과 바뀐 상황은 반성과 용서, 그리고 화해로 이어질 수 있는 것이다. 인간의 삶 속에 벌어지는 수많은 애환은 어느 사회에 사는 사람들이나 공통적으로 겪는 일이다. 이런 점에서 3국 국민들이 각자의 삶의 양식과 의미에 대해 고민하는 수준 높은 독립영화나 단편 드라마를 제작해 공동으로 방영하는 것도 좋은 방안이 될 수 있다. 끝으로 뉴미디어 시대에 맞게 한·중·일 3국 ‘선플’ 시민연대운동을 기획해 보는 것은 어떨까.

서로를 이해한다는 것은 마음을 열게 된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한·중·일 국민들 간에 상대를 있는 그대로 이해하고 다른 점을 인정하게 된다면 정치적 갈등은 그 사회적 동력을 잃어버릴 수도 있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노력이 첨예하게 대립각을 세우는 정치적 논리를 완전히 압도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웃을 단순히 이방인으로 보지 않을 때 감정이 이성을 가릴 가능성은 많이 완화될 수 있을 것이다. 세계 최고의 경제적 역동성과 잠재력을 가지고 있는 동북아 3국이 갈등을 반복할 때 그 피해는 3국 국민 모두에게 돌아가게 된다.

이지용 국립외교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