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설교] 그리스도인의 표지

입력 2014-08-04 02:56

기독교인을 대상으로 한 다양한 조사 결과를 보면 한결같이 등장하는 기독교인에 대한 태도가 있습니다. ‘이기적이다’ ‘배타적이다’는 등의 표현입니다. 어떤 분들은 이러한 결과가 일부 미성숙한 성도들의 모습 때문이라고 치부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비록 일부 성도의 미성숙함이라 할지라도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가슴 아프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 일부에 우리가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이 바라보는 그리스도인의 표지(標識), 즉 믿지 않는 다른 사람들과 구별되는 특징이나 표시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바울은 고린도전서 12장과 14장에서 은사에 대해 가르칩니다. 그런데 중간 장인 13장에서 갑자기 사랑에 대해 논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구조 때문에 일부 학자는 나중에 편집된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바울은 아주 논리적입니다. 분명 13장은 사랑에 대한 가르침으로 가득 차 있지만 이것은 은사에 대한 하나님의 마음이 무엇인지를 바르게 보여주고자 함입니다. 13장에서 바울은 각종 은사를 받은 그리스도인이 가야 할 가장 좋은 길이 무엇인지 보여주고 있습니다.

운동선수가 아무리 경기를 잘해도 반칙을 하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이것은 선수만이 아니라 교회와 모든 그리스도인이 새겨야 할 말씀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좋은 은사를 가지고 있어도 좋은 길을 가지 않으면 세상에 유익을 끼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에게 화려한 언변과 지식, 권력이 있어도 좋은 길이 아니면 선한 영향을 줄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의 향기는 바로 사랑입니다. 조너선 에드워즈 목사는 모든 그리스도인의 사랑은 그 원리가 하나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사랑은 한 성령으로부터 나왔으며, 한 성령의 역사로 이루어집니다. 또한 우리가 사랑하는 대상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받은 이들입니다. 이렇듯 사랑을 행하는 것은 그리스도인 됨을 증명하는 일, 즉 표지입니다. 사랑이 곧 그리스도인이 행하는 일이어야 합니다. 사랑이 없다면 그리스도인은 짠맛을 잃은 소금과 같습니다. 그 증거가 바로 1∼3절에 나옵니다. 능력 있는 말을 많이 해도 사랑이 없으면 잡음에 불과합니다. 놀라운 지식과 이적의 능력을 갖고 있다 할지라도 아무것도 아닙니다. 모든 것으로 구제한다고 해도 유익이 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순교의 자리에 있다고 할지라도 아무 의미가 없을 수 있습니다. 이 모습들은 오늘날 우리 가운데 나타나는 모습입니다. 교회에서 은사와 이적과 신비한 일들이 벌어진다고 떠들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사회의 각 영역 가운데 지식과 권력을 가진 그리스도인이 많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존경하지 않습니다. 한국 사회에서 행해지는 사회봉사 활동의 약 70%를 교회가 감당하고 있다고 하는데 세상은 교회를 신뢰하지 않습니다. 교회를 통해 거룩함을 배우지 못합니다.

우리가 선한 일을 많이 하는 것은 소중한 일입니다. 그러나 사랑 없는 이기적 봉사와 행함은 자기만족일 뿐입니다. 영웅 심리에 물든 그리스도인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사랑으로 진리를 전하고, 사랑으로 진심을 나타내야 합니다. 세상이 그리스도인의 중심을 보았을 때 그것은 사랑이어야 합니다. 사랑이 그리스도인의 표지입니다. 이 표지가 견고할 때 세상은 그리스도의 향기를 맡습니다.

신동식 빛과소금교회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