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 교황이 다음주 방한한다. 25년 만에 이뤄지는 교황 방문 행사를 앞두고 가톨릭계는 물론 개신교계도 술렁이는 모습이다. 가톨릭 신자들은 기대로 부풀어 있는 듯 보이는 반면 개신교계에서는 그의 방한 여파가 행여 신도들 이탈로 이어지지 않을까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초점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전후 가톨릭의 변화 기반을 마련했던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65)의 개혁정신에 맞닿아 있는 인물이라는 데 있다. 그에게는 최초라는 수식이 적지 않다. 진보적 성향인 예수회 출신으로는 처음, 라틴아메리카 출신으로서도 처음, 가난한 이들에게 헌신했던 아시시의 성인 프란치스코를 교황의 공식 이름으로 택한 것도 처음이다.
2차 바티칸 공의회는 가톨릭계에 적잖은 변화를 가져왔다. 권위주의적이고 율법적이며 성직자 중심주의에 매몰됐었던 가톨릭에 새 바람을 불어넣었기 때문이다. 공의회 이후로도 가톨릭의 교황 무류(無謬) 입장은 여전하다는 지적도 있지만 개혁을 추구해 왔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제대로 된 개혁은 늘 진행형이라야 맞다. 2차 바티칸 공의회의 자문 신학자였던 칼 라너는 65년 12월 12일 공회 폐막식 강연에서 “쇄신과 개혁을 위한 하나의 시작을 내딛었을 뿐 그것은 곧 시작의 시작이었다”고 공의회를 평가했다. 적어도 프란치스코 교황의 등장은 바로 그 시작이 계속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사실 2차 바티칸 공의회가 거론한 여러 개혁 방안은 이미 450년 전 마르틴 루터가 제기한 문제점에 대해 가톨릭이 오랜 침묵 끝에 내놓은 응답이었다. 루터는 당시 가톨릭의 타락상에 대해 ‘오직 믿음으로(Sola fide)’를 강조하면서 구속의 역사(役事)에 필요한 것은 돈도 명예도 선행도 권위도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당시 가톨릭은 루터의 ‘오직 믿음으로’에 제대로 부응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개혁을 주장하는 이들을 되레 핍박했다. 이후 가톨릭에 저항하는 프로테스탄트, 즉 개신교가 탄생한 것은 필연적인 수순이었다. 가톨릭은 흔들리는 위상을 내부적으로 단속하려는 움직임을 끊임없이 시도했다. 예컨대 가톨릭에서 진보적으로 평가돼온 예수회의 탄생(1534)도 종교개혁의 여파를 수습하려는 연장선이었다. 이른바 반동종교개혁이다.
노르웨이의 교회사학자 칼 비슬로프의 유명 저작 ‘루터와 칼뱅’에 따르면 루터는 ‘오직 믿음’ 외에도 ‘오직 성경으로(Sola scriptura)’ ‘오직 은혜로(Sola gratia)’ ‘오직 그리스도로(Solus Christus)’ ‘오직 하나님의 영광(Soli Deo gloria)’을 주장했다. 문제는 500년 전 개신교가 부패하고 낡은 가톨릭을 향해 저항하며 주장했던 요구사항의 현재성이다.
분명 프로테스탄트 교회는 구태의 가톨릭을 박차고 나온 영광의 역사를 맛봤다. 다만 오늘날 프로테스탄트 교회가 탄생 출발선의 결기와 다짐을 얼마만큼 간직하고 있는가 하는 문제는 쉽게 답하기 어렵다. 특히 한국의 개신교회 모습에서 오직 은혜로, 오직 성경으로, 오직 예수로, 오직 하나님의 영광으로 등이 얼마나 풍화된 채 잊혀지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없다.
교황 방한에 전전긍긍하고 있는 한국 개신교계의 우려가 바로 그 때문이다. 500년 전 결연히 내세웠던 칼날이 이제 우리에게로 향하고 있음을 느끼지 못한다면 한국 교회의 미래는 암울하다. 국제사회에서 한국을 상징하는 압축성장만큼이나 같은 기간 폭발적인 성장을 경험했던 한국 교회가 좌초 위기에 직면해 있음을 이제는 솔직하게 고백하고 서둘러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그렇다고 낙심할 것은 없다. 종교개혁으로부터 수세기가 지나 2차 바티칸 공의회를 통해 어렵사리 개혁을 표방하고 구체적인 이슈를 하나씩 거론함으로써 오늘날까지 가톨릭이 세계종교로 인정받고 있는 사례는 시사하는 바 크다. 그들의 개혁이 여전히 진행형인 것처럼 한국 교회의 변화와 혁신은 지금 시작해도 늦지 않다. 교황 방한이 그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
조용래 편집인 jubilee@kmib.co.kr
[조용래 칼럼] 교황 방한 어떻게 볼 것인가
입력 2014-08-04 02:57 수정 2014-08-04 15: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