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이재만 (1) 종친들, 족보 보이며 “고시 합격해 나라에 큰일을”

입력 2014-08-04 02:57
하나님을 영접한 후 항상 감사와 은혜가 넘친다는 이재만 변호사가 자신의 서울 서초구 집무실에 걸려 있는 액자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강민석 선임기자

법정은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치열하게 쟁점을 다투는 전장이다. 하늘도 알고 땅도 아는 진실이라 해도 증거가 부족하면 진실은 어둠 속에 묻히게 된다. 1년에 100만건이 넘는 소송에서 양 당사자 중 한 사람은 반드시 거짓말을 하고 있다. 그 거짓을 뒷받침하는 증거들로 위증하는 사람도 있다. 더 나아가 죄 없는 사람에게 누명을 씌우는 무고사범도 있다.

특히 법정에서는 사랑을 해서 부부가 되었는데 원수가 되어 남남이 되기도 하고, 묻지마 범죄로 아무런 잘못이 없는 사람이 피해자가 되기도 한다. 승승장구하는 기업의 대표가 동업자의 배신과 무고로 풍비박산이 나기도 한다.

내가 수많은 소송을 대리하면서 얻은 결론은 행복이나 성공은 누구와 함께 가느냐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좋은 멘토를 만나는 것만으로 삶의 색채가 순식간에 바뀌곤 한다. 내 인생의 멘토는 바로 사랑의 구주이신 예수 그리스도다. 나 역시 예수와의 진심어린 만남을 통해 코페르니쿠스적인 변화를 겪었다.

평범하고 보잘 것 없는 인간인 이재만에게 예수가 나의 삶 속의 변호 업무에 어떤 능력을 주었고 내가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 깨닫게 해주신 이야기를 여러분과 나누길 원한다. 고난 속에서도 빛으로 인도하셔서 행복과 기쁨을, 용서와 화해를, 사랑과 평안을 저에게 주시는 예수를 여러분도 만나기 바라는 마음에서다.

난 서울 토박이로서 집안(전주 이씨)의 선산이 경기도 국수리에 있었는데 아버지는 명절이나 시제 때 어린 나를 이곳에 데려가곤 하셨다. 수염을 길게 기르고 갓을 쓴 집안 어른들은 공부를 잘한다는 내게 족보를 보여주면서 “너는 고시에 합격해 나라를 위해 큰일을 하거라”라고 하셨다. 유년시절을 집안어른들의 기대 속에서 보냈다.

배재고를 졸업한 첫해 대학입시에서 아슬아슬한 차이로 낙방했다. 나는 재수를 시작했고 종로에 있던 ‘정일학원’에 다녔다. 당시는 청바지에 통기타로 대변되는 청년문화가 급격히 확산되던 시절이었다. 난 공부도 나름 열심히 했지만 좀 독특한 재수생에 속했다. 수염을 기르고 긴 장발에다 고무신을 신고 다니는, 마치 히피나 철학가 같은 행색을 했던 것이다. 당시 학원에서는 하계 캠프인 여름학교를 열어 강의도 듣게 하고 밤에는 캠프파이어를 통해서 재수생의 긴장을 풀어주었다. 나는 친구들과 보컬그룹을 만들어 신나는 공연의 사회를 보았다. 재수시절이 비참한 시절이라고 보컬그룹 명칭이 ‘비참스’였다,

비참스 공연을 본 학원장이 “장발에 수염 기르고 사회 보는 저 친구 당장 내보내라. 다른 모범학생들 물들겠다”고 지시했다. 나를 두고 한 말이었다. 그러자 옆에 있던 교사가 “지난 모의고사에서 우리 반에서 1등한 친구”라고 하자 원장이 놀라면서 그 후에 나를 만나면 여러 가지 문제에 대해 대화 상대가 되었다.

그해 학원선생님들의 기대와 달리 또 낙방했다. 장남에게 거는 부모의 기대, 종친 어른들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는 점 때문에 압박감이 컸지만 삼수의 길로 들어섰다. 결국 삼수 끝에 연세대 정외과에 입학했다. 난 대학시절 백양로 벚꽃그늘 아래 벤치에서 물결 흩어지는 대로 낭만적인 대학시절을 보냈다.

모교 배재고나 연세대학은 미션스쿨이었다. 따라서 학교 다니는 내내 채플시간과 성경공부 시간이 있었다. 이런 환경 덕분에 불교 집안에서 성장한 난 기독교에 대한 거부감을 갖지 않았다.

정리=김무정 선임기자 kmj@kmib.co.kr



◇약력:1952년 서울 출생,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및 동대학 행정대학원 졸업, 대한변호사협회 이사 역임, 변호사 1호 명강사 선정, 대한체육회 법률고문, 연탄은행 이사, 다일공동체 협력대사, 굿네이버스 홍보전문위원, 세계예능교류협회 이사장, 충신교회 안수집사, 법무법인 청파 대표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