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시] 숟가락과 삽

입력 2014-08-02 02:53

홍일표(1958∼ )

나는 한 생애를 숟가락질로 탕진하였다

내 속의 허공을 메우기 위해

아침, 점심, 저녁

그것도 모자라 수시로 숟가락을 들었다

그러나 이때껏 작은 고랑 하나도 메우지

못하고

여기까지 왔다

여전히 배가 고프고

왼손 오른손 다 동원해도

나는 텅텅 울리는 커다란 독이다

채워지지 않는 슬픈 욕망이다

세월이 흐르면서 금속성의 연장은 자란다

조금씩 키가 커지고

쓰면 쓸수록 욕망의 몸집도 불어난다

기진하여 더 이상 생의 도구를 들 수 없을 때

숟가락은 슬슬 떠날 채비를 한다

작고 날렵했던 한 시절을 청산하고

평생 섬겼던 주인을 위해 마지막 봉사를 한다

밥 대신 붉은 땅을 파내어 잠자리를 마련하고

주인과 더불어 고단한 생애를 마감한다

고분에서 출토된 청동숟가락이

터무니없이 크고, 많이 야윈 까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