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버스 가요반주기 설치 금지 추진 논란] “이참에 관광버스 춤 근절” VS “행정편의 발상”

입력 2014-08-02 02:09
버스 통로에 승객들이 몰려나와 춤을 추는 ‘관광버스 춤’을 막기 위해 정부는 전세버스의 가요반주기 설치 금지 방침을 추진 중이다. 그러나 관련 업계는 ‘가요반주기 설치=관광버스 춤’으로 간주하는 것은 행정 편의적 발상이라며 반발한다. 가요반주기 설치보다는 안전을 해치는 음주가무 행위에 단속이 집중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빈대 잡자고 초가삼간 태우는 격”=경남 지역에서 전세버스를 운행하는 민영욱(72)씨는 지난달 한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날벼락을 맞았다. 버스에 올라탄 단속반이 가요반주기가 불법부착물에 해당한다며 철거하라고 명령했기 때문이다. 민씨는 1000만원 가까이 들여 스피커 등과 함께 설치한 가요반주기를 떼어내야 했다. 공임은 별도로 지불했다.

전세버스 운전사 이경호(59)씨도 지난해 4월 고속도로에서 단속을 당해 40일 면허정지 처분을 받았다. 승객들이 앉은 자리에서 마이크를 잡고 노래를 불렀는데도 사회자가 서 있었다는 이유였다. 이후 이씨는 단속이 집중되는 고속도로 휴게소에 들르지 않는다. 승객들에겐 졸음쉼터에 있는 화장실을 사용하거나 급할 경우엔 갓길에서 볼일을 해결하도록 유도하고 있다고 한다.

전세버스 기사들은 “부엌칼이 살인에 쓰인다고 부엌칼 제조를 금지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정부를 성토했다. ‘관광버스 춤’을 막겠다는 당국의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가요반주기 설치 자체를 음주가무로 간주하는 것은 지나치다는 것이다. 가요반주기가 불법화되면 전세버스 1대당 설치비 1000만∼1500만원 정도를 고스란히 날리게 된다.

◇오락가락 단속=가요반주기 설치업체 대표 정헌근(54)씨는 당국에 가요반주기 단속 근거에 관한 질의를 보냈다. 경찰청은 “관광버스에 음향기기가 설치됐다고 바로 단속하는 것은 부적절한 단속”이라는 회신을 보내왔다. 교통안전공단은 “음향·영상기기는 승인이 불필요한 장치로 불법구조변경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답변했다. 정씨는 “여태껏 무슨 근거로 가요반주기를 단속했는지 모르겠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국토교통부는 행락철과 휴가철 또는 대형 사고가 터질 때마다 가요반주기 단속 지침을 내렸다. 현재 가요반주기 단속은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에 규정된 ‘사업개선명령’ 조항에 따라 이뤄진다. 국토부 장관 또는 시·도지사가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사항을 운송사업자에게 명령할 수 있고 불복할 경우 사업정지나 과징금이 부과된다. 그러나 ‘안전운송 확보와 서비스 향상을 위해 필요한 조치’라고만 규정하고 있을 뿐 명확한 근거가 없기 때문에 가요반주기 단속은 오락가락을 되풀이했다.

◇“이참에 뿌리 뽑겠다”=세월호 참사 이후 여론이 들끓자 국토부는 지난 5월 가요반주기 설치 금지를 명문화하기 위해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 시행규칙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그러나 지난 29일 시행된 규칙엔 이 금지 조항이 빠졌다. 업계 반발이 워낙 거셌기 때문이다. 게다가 가요반주기 금지 정책은 국토부 스스로 내놓은 자동차 튜닝산업 진흥대책과도 어긋난다. 국토부는 지난해 배포한 자동차 튜닝 매뉴얼에서 ‘오디오 및 스피커는 승인이 필요 없다’고 적시했다.

국토부 관계자는 1일 “입법예고 기간에 여러 의견이 접수돼 내부 검토를 진행 중”이라며 “가요반주기 설치 금지를 백지화한 것은 아니다”고 강조했다. 9∼10월쯤 다시 입법을 추진할 계획이다.

버스 안에서 일어나 춤을 추다가 급정거 또는 사고가 발생하면 심각한 인명피해를 초래한다. 정부는 전세버스의 가요반주기를 금지하면 ‘관광버스 춤’이 사라질 것으로 보고 있다. 반면 업계는 버스 내부가 잘 보이도록 선팅 강도를 규제하고 버스 내 가무행위에 대해 신고포상제를 실시하는 방법 등으로 ‘관광버스 춤’을 근절할 수 있다고 맞서고 있다.

선정수 기자 js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