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대전의 막바지 무렵인 1944년 9월부터 1945년 5월까지 독일군은 네덜란드를 봉쇄했다. 제대로 영양을 섭취하지 못한 임신부들은 저체중아를 낳았다. 그런데 이때 태어난 아기들은 성장하면서 정상적인 상황에서 태어난 아기들보다 오히려 체중이 더 나가고 키가 컸다. 성인이 된 후에는 다른 사람들에 비해 비만과 당뇨병을 앓는 비율이 눈에 띄게 높았다.
산모로부터 음식물 섭취가 적은 환경에 처한 태아는 신진대사율을 낮추어 가능한 한 많은 칼로리를 비축하게 된다. 어머니 뱃속에서의 배고팠던 기억이 생체리듬을 바꾸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자라면서 다시 영양이 풍족한 환경을 만나자 그에 적응하지 못한 채 비만과 당뇨병이 발병했던 것이다. 비교적 최근의 연구에서도 저체중아로 태어난 소아는 정상으로 태어난 소아보다 당뇨나 고혈압, 고지혈증 같은 대사증후군 위험이 6배 이상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더 큰 문제는 암스테르담의 저체중아들이 결혼해 낳은 후손들의 건강까지도 좋지 않은 사례가 많았다는 점이다. 어떻게 산모의 일시적인 영양 부족이 3대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걸까.
이에 대해 해답을 제시하는 한 연구결과가 최근 영국 케임브리지대학 연구진에 의해 발표됐다. 연구진은 임신 중인 실험쥐에게 정상적인 먹이보다 칼로리 함량이 50% 부족하게끔 공급했다. 그 결과 실험쥐들은 저체중 새끼들을 낳았으며, 성장하면서 당뇨병 징후를 나타냈다. 또 그 새끼들이 자라서 낳은 3세대 새끼들 역시 당뇨병 증상을 보였다. 연구진은 정상적 환경에서 성장한 새끼와 실험대상군 새끼들의 정자 게놈 메틸화를 비교한 결과, 그 패턴이 판이하게 다르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메틸화란 동일한 유전자를 갖고 태어나도 그중 어느 부위가 활성화되고 비활성화 되는지를 결정하는 과정이다. 놀라운 것은 실험대상군의 경우 3세대에 이르러 메틸화 패턴 변동이 사라진 후에도 유전자 발현 변화는 유지됐다는 점이다. 연구진은 정자에 생긴 메틸화 패턴 변화는 미지(未知)의 메커니즘을 통해 유전자 활성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친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한다.
조선시대 사주당 이씨가 쓴 ‘태교신기’에는 “스승의 10년 가르침보다 어머니 뱃속의 10개월이 낫다”고 적혀 있다. 이를 앞의 연구결과에 적용하면 다음과 같은 말이 된다. “태어난 후 30년의 영양상태보다 어머니 뱃속의 10개월이 낫다.”
이성규(과학 칼럼니스트)
[사이언스 토크] 3대를 좌우하는 10개월
입력 2014-08-02 02: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