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은 투잡중…“학원에서 손을 떼고 싶지만 교회 유지와 생계 위해”

입력 2014-08-02 02:13
서울에서 학원을 운영하며 목회하고 있는 김수식(가명) 목사가 지난 30일 초등학교 2학년 학생에게 수학을 가르치고 있다.
그리스도의 종, 사도 바울은 '투잡'(Two Job·이중직)이었다. 그는 평일 생계를 위해 천막을 만들었고, 주일엔 말씀을 전했다(행 18:3∼4). 한국기독교목회자협의회가 지난해 초 글로벌리서치에 의뢰해 500명의 목회자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목회자 다섯 명 중 한 명꼴로 이중직이었다. 목회자의 소득원을 질의한 결과 '개인 활동으로 소득을 얻는다'는 응답자가 20.2%에 달했다(아래 표). 또한 지난 4월, 월간 '목회와신학'이 목회자 90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 응답자의 37.9%가 사역 외 다른 경제활동을 한다고 답했다. 다른 경제활동을 하는 이유는 대다수(69.4%)가 생계를 위해서였다. 경제적 요인으로 인한 이중직에 대한 찬성률은 73.9%에 달했다.

“수학은 원리와 반복이 중요해. 숙제 내준 건 다 풀었니?”

지난 30일 오후 3시. 서울 강서구의 C영어수학 학원 교실. 20㎡(5평) 남짓한 교실에서 원장 김수식(가명·57)씨가 초등학생들을 상대로 수업을 시작했다. 하루 중 가장 무더운 시간. 이날 오후 기온은 32도, 습도는 51%를 가리켰다. 가만히 있어도 등줄기에 땀이 흘러내렸다.

아이들은 별로 짜증을 내지 않았다. 교실 한쪽 벽에 달린 낡은 선풍기 한 대는 좌우회전을 이어갔고, 아이들은 그 바람을 맞으며 공부에 열중했다. 김씨는 선풍기 바람의 끝자락이 닿는 화이트보드 앞에 선 채 수학 공식을 썼다 지웠다 하며 설명을 이어갔다. 어느덧 그의 이마에 땀이 흘렀다.

한 시간 전, 김씨는 이날 처음 등록한 초등학교 2학년 박모(9)군과 공부했다. 일대일 수업이었다. 김씨는 박군의 어깨를 두드리며 “어디, 문제를 읽어볼까. 그림을 보고 알맞은 수를 써넣는 거야. 1000이 3개, 100이 2개니까 모두 얼마가 되지?” 저녁식사를 마친 후 아들의 숙제를 챙겨주는 다정한 아빠 같았다.

수업 중에도 아이들은 불쑥불쑥 출몰했다. 더위를 피해 미리 온 아이, 수업을 마친 아이들이 학원의 좁은 복도를 연신 서성거렸다. 김씨는 그때마다 “이제 오니?” “조금만 조용히 하자”고 말했다. 또 다른 교실에서는 김씨의 아내 최영숙(가명·46)씨가 영어를 가르쳤다. 문이 빼꼼히 열린 교실에서는 “웨어 이즈 유어 맘?” 하는 소리가 흘러나왔고 아이들은 영어로 재잘거렸다.

오후 5시쯤 수업을 마친 김씨 부부를 상담실에서 만났다. 아내는 남편에게 물었다. “목사님, 복숭아 드릴까요?” 김씨는 학원에서 불과 100m 떨어진 A교회 담임목사였다. 이날은 수요일. 여느 목회자 같으면 수요예배를 위해 하루를 준비해야겠지만 이들은 오후 1시부터 밤 10시까지 꼬박 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쳤다. 그렇다고 수요예배를 건너뛰는 것은 아니다. 수요일의 경우 오후 7시30분부터 시작되는 예배를 위해 저녁 수업은 하지 않는다.

‘학원 선생’ 김 목사는 1주일에 3일(월·수·금요일)을 꼬박 학원 수업에 매달린다. 그렇다고 목회자로서 기본적인 사역을 포기한 것은 아니다. 새벽 5시30분 시작하는 새벽예배와 밤 10시 저녁기도회는 반드시 지킨다. 두 번의 기도회는 그에겐 하루의 ‘십일조’인 셈이다.

김 목사는 “저녁 기도회는 교인들도 참석하도록 유도하고 있다”며 “그러나 사실은 나의 영성 관리를 위한 시간”이라고 말했다. 그는 “가급적 학원에서 손을 떼고 싶지만 교회 유지와 생계를 위해서는 불가피하다”며 “하루 빨리 목회 사역에만 전념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김 목사는 1995년 신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교회를 개척했다. 동기들처럼 경기도 일산이나 분당 등 신도시에 그럴싸하게 교회를 개척하고 싶었지만 여건이 어려워 임대료가 저렴한 지금의 지역에서 목회를 시작했다. 1년 후엔 교육 선교를 목적으로 무료 학원도 시작했다.

마침 대학시절 강남에서 수학 과외로 고3 수험생들을 대학에 보낸 경험도 있었고 대학에 들어오기 전에는 부산에서 학습지 사업을 하면서 큰 돈을 만져보기도 했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에는 자신이 있었기에 학습을 돕고 복음도 전하자는 취지에서 학원을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당시 2층의 임대교회 자리에 갑자기 주인이 들어오면서 교회는 지하로 밀려났고 지하를 싫어한 교인들은 하나둘 떠나기 시작했다. 자립의 ‘마지노선’이라는 30명 교인은 물 건너갔고 교회는 계속 위축됐다. 이후 2003년 지금의 장소로 교회를 옮겨 학원 사역을 병행했지만 교회 내 학원 운영이 학원법에 저촉되면서 다시 문을 닫아야 했다.

“그래도 학원을 포기할 수 없었어요. 선교 목적도 있었고 일단 생활비를 충당해야 했으니까요.” 마침 6명(5녀 1남)이나 되는 김 목사의 자녀도 가르칠 겸 교회 아이들의 학습도 돕자는 생각에 저렴한 비용을 받아가며 2년 전 지금의 학원을 시작했다. 지금은 30여명의 학생들이 공부하고 있고 여기서 나오는 학원비로 교회 임대료와 사역비, 생활비를 충당한다.

김 목사는 19년 전 교회를 개척할 때부터 지금까지 사례비를 받아본 적이 없다. 현재의 교회에서도 사택 임대료 명목으로 받고 있는 20만원이 전부다. 교회는 장년 성도 20여명에 교회학교 학생 10여명 등 40여명의 교인으로 구성돼 있으며 1년 교회 재정은 3000만원 정도다. 미자립교회지만 외부로부터 어떤 지원도 받지 않는다. 학원은 보증금 2000만원에 월 60만원을 낸다. 상가건물에 위치한 교회와 사택도 한 달에 200만원이 넘게 임대료 등으로 지출된다.

그는 “개척교회나 작은 교회 성도들은 신앙이 자라면 떠나더라”며 “만약 성도들이 계속 머물러 있었다면 교회가 꽤 커졌을 것”이라고 했다. 김 목사는 그러나 “아쉬워하면 한이 없다”며 “지금 공동체를 이룬 성도들만이라도 열심히 섬기고 싶다”고 말했다.

김 목사는 생계 때문에 부득이 학원 운영을 하고 있지만 목회자는 가능하면 직업을 갖지 않는 편이 좋겠다고 했다. “목회에 전념해야 더 건강한 목회를 할 수 있다고 봐요. 다만 어쩔 수 없이 일을 해야 한다면 교회 사역과 연계할 수 있는 공부방이나 복지사업 등의 분야가 좋을 것 같습니다.”

그는 바쁜 학원 운영에도 대학생 성경공부 모임, 목회자 독서토론 등에도 나간다. 동료 목사들도 그의 ‘이중직’을 긍정적으로 보는 편이라고 했다. “어떤 목사님은 생계 때문에 운전을 시작했는데 교회를 돌볼 수 없어 결국 8개월 만에 문을 닫은 경우도 있었어요. 이중직은 위험이 따릅니다. 저도 학원이 잘되면 교사를 두고 목회 사역에 전념하려고 합니다.”

상담실 한쪽 벽면에 성경 구절이 눈에 들어왔다. “네가 큰일을 행하겠고 반드시 승리를 얻으리라.”(삼상 26:25)

글·사진=신상목 기자 smsh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