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율형 사립고'(자사고) 지정 취소 여부를 놓고 교육현장에서 논란이 거세다. 진보 성향 교육감들은 교육 불평등과 학교서열화를 초래하는 전국 49개의 자사고를 손봐야 한다는 입장인 반면 자사고 교장들, 학부모, 학생들이 거세게 반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사고가 일반고를 황폐화시키고 있다는 진보 성향 교육감들의 주장에 대해 자사고 교장 등은 자사고가 오히려 정부의 교육예산을 절감하고 학교교육의 체질 강화를 이루었기 때문에 임의로 폐지해서는 안 된다고 반박한다. 36년 교사경력으로 올 초부터 전국자사고교장연합회장을 맡고 있는 김용복(60·정동제일교회 권사) 배재고 교장을 31일 서울 강동구 고덕로 교정에서 만나 자사고 폐지 논란에 대한 입장을 들어봤다.
-‘자사고를 폐지할 수 없다’는 입장이 강경하던데.
“그렇다. 대한민국 교육의 다양성과 수월성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자사고가 등장하던 시점은 학교교육에 대한 불신이 높아지기 시작하면서 사교육이 극에 달했던 시기다. 자사고는 학부모들로부터 외면당하기 직전의 학교교육을 되살려 놨다. 그 결과 사학의 위상도 다시 높아지고 있다. 교육선진국 치고 사학의 역할이 크지 않은 곳이 없다.”
-하지만 자사고를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적지 않다.
“자사고 폐지론자들은 자사고가 귀족학교라고 말하는데 그렇지 않다. 일반고와 자사고의 학생 1명에 대한 교육비는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 자사고 학부모가 일반고에 비해 추가 부담하는 학비는 일반고에서도 국가재정으로 그만큼을 지원하고 있다. 단지 부담의 주체만 다를 뿐, 자사고 학생도 일반고 학생도 비슷한 수준의 교육비가 들고 있다. 왜 비슷한 학비가 쓰이는데도 일반고 상황이 어려운지를 토론하기보다 자사고를 귀족으로 낙인찍는지를 묻고 싶다. 자사고는 특히 다양한 학력 향상 및 학교적응 프로그램을 개발해 실시하고 있다. 자사고를 폐지하면 우리 사회 계층상승의 튼튼한 사다리 중 하나가 없어지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자사고 때문에 일반고가 황폐화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절대 아니다. 일반고가 힘든 것은 과거에 비해 다양한 학생들이 입학하고 있음에도 여전히 대학진학자에게만 필요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기 때문이다. 특히 예술이나 체육, 특성화고로 진학을 희망했음에도 일반고로 진학한 학생들이 겪는 어려움을 해결해주지 않고 있다. 또 자사고가 일반고 시절 받았던 재정결함지원금이 연간 25억∼30억원에 달하기 때문에 서울 25개 자사고를 유지할 경우 연간 600억원이 넘는 예산이 절감되는 셈이다. 이 예산으로 일반고 한 학교당 예체능, 직업 관련 교과를 6∼8개 이상 개설할 수 있고, 아예 관련 학교를 개설할 수도 있다.”
-혹시 자사고에서 잘못한 점은 없는지.
“일부 폐지론자들이 자사고가 입시위주의 교육을 시키고 있다고 주장하는데 솔직히 대한민국에서 입시위주의 교육을 안 시키는 고등학교가 있는지 묻고 싶다. 지금은 국·영·수만 가지고 대학을 갈 수 있는 시대가 아니다. 성적이 우수해야 할 뿐 아니라, 학생이 자신의 관심과 능력을 구체적인 성과물과 함께 드러내야 합격을 시켜준다. 다양한 스펙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내실 있는 수업을 넘어 참여하는 수업을 만들고 다른 학교에 비해 몇 배의 교내 대회를 개최하며 학생 개개인에게 정성을 들여 활동 실적을 기록해 주는 것은 자사고 교사들의 각고의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경기도교육청이 안산동산고에 대해 자사고 지정 취소 의견을 교육부에 제출했다.
“충격적이다. 의외의 결과다. 안산동산고는 기독교 사학으로 모든 미션스쿨의 본이 되고 인성교육이나 지성교육을 잘 시키는 자사고로 유명하다. 그런데 경기도교육청은 오류투성이의 평가로 지정 취소 방침을 밝혔다. 절차를 지키지 않았고 당사자와 충분한 협의도 없었다고 본다. 이런 평가는 앞으로 더 이상 받을 필요가 없다. 그리고 교육청이 취소 의견을 내도 교육부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 만에 하나 안산동산고 자사고 지정 취소가 최종 결정된다면 단호히 대처할 것이다. 대정부 투쟁은 물론 관련법에 따라 행정소송 등을 생각하고 있다.”
-자사고는 미션스쿨의 건학이념과도 관련 있는 것 같다.
“그렇다. 기독교 등 건학이념에 따라 학교를 운영하려는 자사고는 배재고를 비롯 신일고 대광고 이화여고 이대부고 대성고 안산동산고 등 상당수 있다. 종교적 목적으로 설립한 종립학교에 대해 그 정체성을 묵살하고 교육당국의 공립학교와 똑같이 취급해 ‘이래라 저래라’ 강제하는 것은 ‘교육독재’와 다름없다. 자사고가 이명박정부에서 종교의 자율성 문제에 대한 대안으로 나온 제도임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학생들의 개성과 특성이 다르듯 교육에도 다양화가 필요하다고 본다. 이런 교육을 통해 우수한 인재를 길러야 함에도 불구하고 시작한 지 3∼4년 밖에 안 된 자사고를 폐지하려고 강압하는 것은 교육다원화의 포기이며 교육미래의 무책(無策)이라고 생각한다.”
유영대 기자 ydyoo@kmib.co.kr
“불신받던 학교교육 살린 自私高 폐지 안돼”
입력 2014-08-01 03: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