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김재중] 경기부양에 동원되는 통화정책

입력 2014-08-01 03:08

“정치인들이 선거 과정에서 금리 인하까지 말하는 건 좀 심하지 않습니까?”

한국은행 고위 관계자가 최근 사석에서 한 말이다. 여당 대표가 7·30재보선 유세에서 한국은행의 8월 기준금리 인하를 기정사실화하는 발언을 한 데 대해 불편한 기색을 드러낸 것이다.

한국은행법 제3조는 “한국은행의 통화신용정책은 중립적으로 수립되고 자율적으로 집행되도록 하여야 하며, 한국은행의 자주성은 존중되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기준금리 결정은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의 고유 권한이다.

한국은행이 펴낸 ‘한국의 통화정책’에 따르면 ‘통화정책은 경제주체의 다양한 이해관계에 영향을 미치게 되므로 경제 안정화를 추구하는 중앙은행은 단기적 성과를 요구하는 외부의 압력과 비판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므로 통화정책을 자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 독립성 확보를 위한 장치가 필요하다’고 돼 있다.

하지만 새 경제팀이 출범하면서 대대적인 경기부양을 위해 총동원령이 내려진 상황이라 한국은행도 자유롭지 못 한 게 사실이다. 특히 여당이 7·30재보선에서 압승하면서 경기부양 드라이브는 한층 힘을 받게 됐고 한은 내 매파(금리 인하 반대파)의 입지는 더욱 좁아졌다. 최경환 경제부총리는 지난 28일 방송기자클럽 토론회에서 “당분간은 확장적인 정책이 필요하다. 적어도 내년까지는 지속돼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은행더러 내년까지 기준금리를 낮추거나 발권력을 동원해 시중에 돈을 풀라는 것이다.

물론 한은법 제4조에는 “한국은행의 통화신용정책은 물가안정을 저해하지 아니하는 범위 내에서 정부의 경제정책과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돼 있다. 현재 소비자물가가 1%대에서 안정돼 있는 만큼 한은이 정부의 확장적 경제정책에 협조하지 않을 명분이 없다.

이렇게 된 데는 한국은행의 책임도 있다. 한은은 2013∼2015년 중기 물가안정 목표 범위를 연 2.5∼3.5%로 제시했다. 하지만 소비자물가는 현재 목표치 하한선에도 못 미친다. 한은 고위 관계자는 “성장 위주의 정부 정책이 강하게 반영돼 중기 물가목표 설정이 잘못된 것 같다”고 시인했다. 또 저성장, 저물가가 예상되는데도 물가 전망치를 지나치게 높게 잡아 한은 스스로 금리 결정의 주도권을 상실했다는 지적도 있다. 금융통화위원회 일부 위원도 지난달 10일 금통위 회의에서 “물가전망 시마다 전망치가 하향 조정돼 온 점을 들어 전망에 체계적인 편향(bias)이 있다는 일부 시각이 있다”면서 “물가전망치의 하향 조정이 반복되면 정책 의도를 갖고 전망치를 높게 잡는 게 아닌가 하는 오해를 불러올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은도 넓은 범주의 정부에 해당하기 때문에 거시경제정책에 협조해야 한다. 하지만 정부의 단기 부양에 한은의 통화정책이 일방적으로 동원되는 것을 우려하는 시각도 적지 않다. 기준금리를 결정할 때는 물가와 정부의 경제정책 외에 해외 위험요인, 가계부채 등 고려해야 할 사항이 많다. 또한 6개월∼1년 뒤에 예상되는 파급효과를 내다보면서 금리 방향을 결정해야 한다.

중앙은행의 독립성이 훼손될 때 통화정책에 대한 시장의 신뢰는 추락한다. 그렇기에 정부와 여당은 한은의 역할을 존중하고 금리 결정을 기다려야 한다. 한은 역시 지난해 5월 김중수 전 총재의 ‘깜짝 인하’의 오명을 씻기 위해서라도 이번에야 말로 멀리 내다보고 책임 있게 기준금리의 방향을 결정하기 바란다.

김재중 경제부 차장 j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