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이혜진] 지금 귀 기울이고 있나요?

입력 2014-08-01 02:31

터키에서 온 아담은 덥수룩한 머리를 한 20대 후반의 청년이었다. 자기 몸체만한 대형 배낭을 짊어지고 다니는 다른 이들과 달리 낡은 자전거 한 대와 단출한 가방이 전부인, 딱히 눈에 띄지 않는 평범한 모습이었다.

조그만 바닷가 마을에 머무는 며칠 동안, 해질 무렵이면 순례자들이 삼삼오오 해변으로 몰려들어 모닥불을 피워놓고 이야기꽃을 피우곤 했다. 장기 여행자들이 많다 보니 캠프파이어는 흡사 여행 전사들의 무용담을 나누는 의식(儀式)이 되곤 했다. 아담은 늘 이 자리에서 자기 이야기를 하는 대신에 사람들의 이야기를 열심히 들었다. 마치 듣는 것이 그에겐 의식인 듯했다. 처음엔 영어를 잘 못해서 그러나 싶기도 했는데, 컴퓨터 프로그래머로 일했던 그의 영어는 흠잡을 데가 없었다. 다른 이들과 비교했을 때 그의 여행 이력만큼 드라마틱한 것도 없었다. 우연히 여행을 시작했다가 파리에서 도보순례를 시작한다는 부부를 만나 자전거를 한 대 구해 여기까지 따라와 버린 것이다.

여럿이 나누는 대화에도 진지했지만, 개인적으로 이야기를 나눌 때도 그 못지않았다. 미동도 없이 에메랄드빛 눈을 빛내며 귀 기울일 땐 그의 몸 전체가 사람들의 이야기를 흡수하는 듯했다. 그의 모습에 하루는 왜 그리 열심히 듣는 거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나는 아직 부족한 것도 많고, 배워야 할 게 많아. 너희들 이야기 하나하나가 나한테는 다 배움이야. 새로운 세계이고.”

얼마 전 지인들과 오랜만에 만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한껏 유쾌한 자리였는데 목이 칼칼하고 눈도 충혈된 채 기운이 없었다. 감기인가 싶었지만 이유는 다른 데 있었다. 우습게도 내 이야기를 하는 데 정신이 팔려 이렇게 된 것이다. 마치 100미터 출발선의 선수처럼 혈안이 되어 조금이라도 아는 주제가 나오면 냉큼 끼어들고, 누가 낚아챌세라 점점 목청을 높인 결과였다. 돌이켜보면 꼭 그날만 그랬던 것 같지 않다. 마치 경쟁을 하듯 자기 이야기하기에 바쁘고, 꽉꽉 내 안에 쌓인 것을 풀어내느라 숨이 차오르게 된 것은.

제대로 듣기 위해선 내 안에 공간을 충분히 비워두어야 한다. 두 눈을 마주하고 상대와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 머물러야 한다. 그때 나의 이야기들은 편히 삼켜두는 게 좋겠다. 그래야 목까지 차오른 설익은 이야기가 아니라, 하나의 세계를 온전히 만나고 난 뒤의 잘 익은 내 삶의 소리들을 비로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이혜진(해냄출판사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