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은 청소년들이 교회를 가지 않는 이유를 공부 때문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너무 바빠서 교회에 갈 수 없는 사람은 없다. 바빠서가 아니라 우선순위의 문제다. 그렇다면 교회가 그들을 잃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세인 레이너는 ‘Faith Experience(신앙경험)’라는 잡지에서 그 이유를 네 가지로 분석했다. 첫째, 청소년들은 교회에 와도 하나님을 만나지 못한다. 하나님과의 만남이라는 본질을 잃은 그들을 위해 아무리 여러 활동을 준비한다고 해도 하나님을 만날 수 없기에 교회를 떠나고 있다.
둘째, 부모가 교회를 우선시하지 않기에 청소년들이 교회생활에 우선순위를 두지 않는다는 것이다. 부모들이 세상의 다른 일보다 교회를 중요시하지 않는데, 자녀들이 교회를 중요하게 여길 리 만무하다. 공부에 집중하라고 해놓고 주중에 피곤했으니 주일이라도 푹 자라고 하는 부모에게서 신앙심 깊은 청소년이 나올 리 없다.
셋째, 청소년들은 자기들끼리 연결할 수 있는 방법이 있기에 더 이상 교회에 의존할 필요가 없게 됐다. 휴대폰이나 인터넷으로 서로의 안부를 묻거나 삶 나누기가 가능한 요즘, 친구들과 만나기 위해 교회에 나올 이유가 없다. 교회는 어떤 기관이나 매체보다 더 친근한 삶의 능력을 느끼게 하는 공동체가 돼야 한다.
넷째, 특별히 교회에 다니지 않는다고 교회에 출석하는 이들과 다를 게 없기 때문이다. 교회에 다닌다고 해서 특별히 다른 점이 보이지 않기에 청소년들은 교회에 출석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는 말이다.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이 꼭 완전할 수는 없다. 그러나 교회에 다니면 삶이 변하고 세상과 다른 무엇이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8500개의 예장 통합 교회 중 50%가량의 교회에 교회학교가 없다는 통계는 우리를 경악하게 만든다. 대학생 중 단 2%만이 교회를 다닌다는 증언은 우리를 암울하게 한다. 어떤 목회자는 자기 교회에 교회학교가 없어서 이웃교회와 연합해 겨우 교회학교를 세우고 거기에 자녀를 보낸다고 한다.
미래세대는 현세대의 거울이다. 무너지는 교회학교를 다시 살리는 길은 두 교사의 헌신에 있다. ‘첫 교사’는 가정학교의 부모교사이며, ‘둘째 교사’는 교회학교의 교사다. 남강 이승훈(1864∼1930) 선생은 암울한 구한말 혼돈의 시기와 혹독한 일제 강점기를 보냈다. 그는 칼과 총보다 젊은이들을 기르고 지도하는데 생을 걸었다. 그는 호랑이처럼 학생들을 지도하고 어머니처럼 자신의 유골과 장기를 주기 원했던 불꽃같은 교사였다. 오죽하면 함석헌 선생이 이승훈 선생을 죽는 날까지 스승으로 모셨을까. 우리는 예수의 심장으로 자신의 삶을 어린 영혼에게 바치는 교사가 돼야 한다.
교사는 다윗이 가지고 있던 균형감각(시 78:70∼72)을 지녀야 한다. 그것은 마음의 완전함과 손의 능숙함이다. 다윗처럼 균형 잡힌 인격과 전문성을 갖추기 위해 힘써야 한다. 평생 모은 모든 것을 미래세대를 위해 바치는, 예수의 심장을 가진 교사가 되어야 한다.
지금 우리는 미래세대를 다시 일으켜 세우고 무너져가는 교회학교를 다시 수축해야 할 절박한 시점에 와 있다. 이 일은 교회학교 교사 혼자 감당할 수 있는 일이 절대 아니다. 미래세대를 다시 세우는 가정과 교회가 돼야 한다. 두 교사가 힘을 합쳐 다시 도전해야 한다. 헌신과 사랑, 불타는 복음 전도의 열정으로 어린 영혼, 미래세대를 기르고 지도해야 한다. 가정학교와 교회학교의 교사여, 다시 일어나 미래세대를 위해 헌신하자. 필자는 이 사역을 다리 놓는 사역, 즉 가교(架橋)사역이라 부르고 싶다. 이것이야말로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주신 최대 사명이라고 확신한다.
김도일 교수(장신대 기독교교육과)
[시온의 소리-김도일] 무너져가는 주일학교 다시 세우라
입력 2014-08-01 02: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