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전화가 왔다. 경룡이 엄마에게서 온 전화였다. 그녀는 최근 내 근황에 대하여 물었다. 나는 이야기했고 그녀는 “하루도 빠지지 않고 기도를 하고 있다”고 했다. 경룡이 엄마는 내 오래된 학부형이다. 내가 교직에 있을 때 그녀의 아들 경룡이를 5학년 때 담임을 했었다. 어느 날 경룡이 엄마가 학교로 나를 찾아왔다. 그때 나는 학교의 왕따였다. 불교학교에서 기독교 복음을 전해서 왕따였고 촌지를 받지 말자고 했다가 교사들에게 왕따를 당했던 때였다.
경룡 엄마는 “선생님이 학교에서 아이들과 예배를 드린다는 게 너무 감사해서 왔노라”면서 감사표시라며 촌지를 내밀었다. 극구 사양해도 ‘감사표시’라며 고집을 부렸다. 쉽게 물러날 것 같지 않아서 “정 그러시다면 교회에 가셔서 헌금으로 쓰시고 나를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라고 했다. 그것이 약속이 되어 그녀는 한결같이 나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
경룡이가 장가를 가서 아들을 낳을 만큼의 세월이 흐른 지금도 그녀는 그 약속을 잊지 않고 있다. 미국으로 이민 가서 살면서도, 그녀가 병중에 있을 때도, 그녀의 집안이 어려울 때도 하루도 빠지지 않고 나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고 했다. 오랜 세월이 흘러 내 전화번호가 몇 번 바뀌어도 어떻게 해서든 먼저 알고 전화를 걸어오는 쪽은 늘 그녀였다. 한 마디 약속을 천금처럼 귀하게 여기는 것 같았다. ‘기도할게요’를 남발하고 지키지 못한 기도의 약속이 많은 나는 그녀의 전화를 받을 때마다 내가 지키지 못한 약속들이 부도낸 수표처럼 하늘에 쌓여 있을까봐 은근히 겁이 나기도 한다. 손가락 걸고 한 약속도 아닌데 그녀는 하나님 앞에서 한 약속이라 생각하고 그토록 긴 세월을 기도하나 보다. 약속이라기보다 일방적인 부탁이었음에도 “예”라고 응답했던 그 한마디에 책임을 걸머졌던 것이다. 약속을 하고 그 책임에 무감각해 교회의 신뢰도가 떨어져가고 있는 시대에 신실히 약속을 지키는 경룡이 엄마는 기독교인의 “예”에 대한 무게를 느끼게 한다.
오인숙(치유상담교육연구원 교수·작가)
[힐링노트-오인숙] 어떤 약속
입력 2014-08-02 02: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