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길] 85세 쿤데라의 문학적 유언… 거장은 유머·가벼움 택했다

입력 2014-08-01 02:11
밀란 쿤데라의 새 소설이 나왔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농담’ ‘정체성’ 등으로 국내에도 많은 독자를 거느린 쿤데라가 2000년 ‘향수’ 이후 14년 만에 내놓은 장편인데다 1929년생 노작가의 마지막 작품이 될 수도 있다는 추측이 섞이면서 출간 전부터 주목을 받았던 책이다.

책장을 펼쳐보면 두 가지 특징이 두드러진다. 장편이라는데 책이 상당히 얇고 이야기 구조가 단순하다. 150페이지로 2시간 안팎이면 다 읽을 수 있는 분량인데다 하나의 제목을 가진 하나의 이야기가 두세 페이지로 종료된다. 뚜렷한 사건도 없고 긴장이나 밀도를 느낄 만한 대목도 없다.

소설의 분위기가 도시적이고 젊다는 것도 의외다. 85세 노인이 쓴 작품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경쾌하다. 파리를 배경으로 했고, 등장인물들은 젊은 남자들이다. 여자들의 배꼽 이야기로 소설을 시작하고, 군데군데 섹시한 에피소드도 배치했다.

어쩌면 마지막이 될 지도 모르는 소설을 쓰면서 쿤데라는 왜 이런 선택을 했을까? 이런 질문이 어쩔 수 없이 삐져나온다. 나이를 고려하면 이번 소설을 쿤데라의 문학적 유언이라는 측면에서 읽어보려는 시도가 없을 수 없다. 그 또한 자신에게 남은 시간을 헤아리며 무언가 중요한 이야기를 남겨야 한다는 생각을 가졌을 법도 하다. 모든 작품이 독자와 사회에 대한 작가의 발언이기야 하겠지만 마지막이라는 걸 의식한다면 중요한 이야기에 대한 유혹은 더 커지게 마련이니까.

뭔가 묵직한 작품을 예상했던 독자들 앞에 그는 유머와 사소함, 가벼움, 무의미 같은 것들로 가득 찬 작품을 내놓았다. 여기에 무슨 의도가 있는 것일까? 쿤데라의 답변을 들을 순 없지만 이 질문이 이번 소설을 읽는데 하나의 흥미로운 포인트가 될 수는 있을 것이다.

이렇게 생각해보면 어떨까. 마지막 작품, 문학적 유언, 이런 측면에 주목해서 이번 소설을 본다면, 쿤데라는 젊은 독자들을 초대해 자신의 마지막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던 게 아닐까. 헐렁하고 가벼운 형식, 경쾌한 문체, 도시적인 분위기 등 젊은 독자들을 겨냥한 흔적이 꽤나 명백하기 때문이다.

농담이나 가벼움, 보잘것없음, 무의미함 같은 것이야말로 중요한 이야기라는 메시지를 전하려고 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의 첫 소설이 ‘농담’이고, 대표작이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라는 걸 기억하면, 말년의 쿤데라가 ‘무의미의 축제’를 선택한 것은 어떤 일관성이나 연속성을 의미한다고 이해할 수도 있다.

소설은 사소하고 무의미한 주제들을 다룬다. 예를 들면, 배꼽이 말해 주는 에로틱한 메시지, 거짓말하고 난 뒤에 느끼는 묘한 희열감, 조용하고 보잘것없는 남자가 파티에서 여성들에게 인기를 끄는 이유, 지나치게 사과를 자주 하는 자신에 대한 불만 같은 것들이다. 알랭, 칼리방, 샤를, 라몽 등 소설에 등장하는 남자들은 특별한 사연이나 비범한 구석이 없다.

그렇다고 이 책이 평범하거나 지루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엉덩이나 허벅지, 가슴이 아니라 배꼽에서, 무의미한 거짓말에서, 또 말의 뉘앙스나 작은 몸짓에서 낯설고 비범한 진실을 끄집어 올린다.

누구나 다 똑같은 모양인 배꼽은 바로 그 무의미함 때문에 그토록 에로틱하다. 거짓말은 도대체 왜 거짓말을 했는지 스스로 알 수 없는 지경인데도 희열을 안겨준다. 보잘것없는 남자들은 여자를 자유롭게 해준다. 작가는 “말이 안 되는가? 물론이다. 부당한가? 말할 필요도 없다. 그런데 ‘그렇다’”고 얘기한다. 사람은 “‘즐겁게 사시는 것 같네요.’ 이상하게도 다르델로는 이 말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처럼 이상하고, 세상은 “헤어지기 전에 인사의 표시로 손을 들어 올렸는데, 거의 수줍기까지 한 이 조그만 몸짓에는 뜻밖에 사람의 마음을 끄는 데가 있었고 라몽의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와 같이 의외로 가득하다는 것이다.

책 뒷부분에 나오는 다음과 같은 문장은 작가의 육성처럼 들린다.

“오래전부터 말해 주고 싶은 게 하나 있었어요. 하찮고 의미 없다는 것의 가치에 대해서죠.(중략) 하찮고 의미 없다는 것은 말입니다. 존재의 본질이에요. 언제 어디서나 우리와 함께 있어요.(중략) 여기, 이 공원에, 우리 앞에, 무의미는 절대적으로 명백하게, 절대적으로 무구하게, 절대적으로 아름답게 존재하고 있어요. 그래요. 아름답게요.”

김남중 기자 n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