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의 복심(腹心)’으로 불리는 이정현 전 청와대 홍보수석이 ‘호남발 선거혁명’을 일으켰다. 새누리당 후보로 전남 순천·곡성 보궐선거에서 승리해 18년 만에 처음으로 호남권에 ‘보수여당’의 깃발을 꽂는 기적을 만들었다. 한국정치의 고질병인 지역 구도를 깼다. 1988년 소선거구제가 도입된 이후 여당(신한국당·한나라당·새누리당) 소속으로 호남에서 당선된 인사는 전북도지사를 지낸 강현욱 전 의원(15대·전북 군산)이 유일하다. 특히 전남에서는 한 명도 없었다. 여당에서조차 ‘이번 선거의 최대 이변이자 성과’라는 평가를 내놨다.
이 당선자는 오후 11시40분쯤 당선이 확정된 뒤 전남도당 선거사무실에서 “진심이면 통한다는 심정으로 제 진심을 다했다. 위대한 순천 시민과 곡성 군민이 선택해 주셨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 당선자는 역사책에 남을 선거 결과를 내는 것으로 정치 인생에 닥친 최대의 ‘위기’를 최선의 ‘기회’로 만들었다. 지난 6월 세월호 참사 와중에 터진 KBS 보도 통제 파문 등으로 홍보수석에서 물러났을 때만 해도 그의 정계 복귀를 낙관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이 당선자가 보궐선거 출마 의사를 밝혔을 때 새누리당 분위기는 부정적이었다. 선거구도가 정권 심판론으로 흐를 수 있다는 우려가 컸다. 하지만 이 당선자는 새누리당의 영역을 불모지나 다름없는 호남으로 넓히면서 단숨에 지역구도 타파의 상징적 인물로 떠올랐다.
친박근혜계의 구심점으로 당·청 사이에서 핵심적인 가교 역할을 할 것이란 관측도 제기된다. 이 당선자는 여권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의중을 가장 정확히 꿰뚫고 있는 최측근이다. 2004년 박 대통령이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대표 시절 수석부대변인을 지냈고, 2007년 대선 경선 때 박근혜 후보 캠프에서 활동했다. 박 대통령이 경선에서 패한 뒤 당내 비주류로 정치적 칩거에 들어갔을 때도 대변인격으로 언론을 상대했다. ‘박근혜의 입’이란 수식어는 이때 생겼다. 박근혜정부가 출범한 뒤에는 정무수석과 홍보수석으로 10년간의 각별한 인연을 이어왔다. 때문에 수평적인 당·청 관계를 내세우며 당권을 장악한 김무성 대표와 다른 목소리를 낼 것이란 해석도 나온다. 청와대에 할 말을 하겠다는 김 대표와 박 대통령 의중을 대변하는 이 당선자 사이에 갈등이 불거질 것이란 얘기다. 박 대통령이 이 당선자에 대한 신뢰를 재확인할 경우 당내 권력이 그에게로 급속하게 쏠릴 수도 있다.
이 당선자는 선거를 앞두고 새누리당 여의도연구원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한 번도 진 적이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그럼에도 실제 당선은 힘들 것이란 기류가 강했다. 현실적으로 투표장에 나가 여당 후보를 찍어줄 조직이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이 당선자는 조직적 열세를 ‘예산 폭탄론’과 ‘지역 발전론’으로 뛰어넘었다. 이번에 당선돼도 임기가 2년이 채 안 된다는 점을 상기시키면서 “일단 써보고 아니다 싶으면 2년 뒤에 갈아 치우라”고 하거나 “(통합진보당 소속) 김선동 전 의원도 되는데 이정현은 왜 안 되느냐”고 강하게 어필한 점도 주효했다는 평가다.
박대출 대변인은 “지역감정의 낡은 틀을 깨부수는 쾌거로, 대한민국 정치에 새 역사를 썼다”고 찬사를 보냈다.
권지혜, 전남=김영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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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0재보선] 이정현 당선…호남 선거 역사 새로 쓰다
입력 2014-07-31 11: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