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더불어사는사람들 사무실에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한 남성의 다급한 목소리가 전화선을 타고 들려왔다. 그는 택배 등 아르바이트를 닥치는 대로 하며 아내와 딸과 근근이 살아왔지만 최근 그마저 일거리가 끊겨 막막하다고 했다. 둘째 출산을 앞두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처가가 있는 경남 진주에 왔지만 전혀 도움을 받지 못했다고 했다. "1일 7만원 하는 산후조리 비용도 내야 하지만 분유 값도 없어요. 가장으로서 자격이 없는 것 같아 괴로워 죽고 싶어요." 아기 아빠는 끝내 울었다.
전화를 받은 이창호(59·길벗교회 집사) 상임대표는 정부의 긴급복지지원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방법을 차근차근 안내했다. 그리고 당장 급한 산후조리 비용과 분유 값, 기저귀 값으로 30만원을 빌려줬다. 며칠 뒤 아기 아빠는 170만원의 지원금을 받았다며 감사 인사를 했다.
더불어사는사람들은 취약계층에 무이자, 무담보, 무보증으로 돈을 빌려주는 기관이다. 적게는 몇 만원에서 최고 100만원까지다. 제출 서류는 간단하다. 주민등록초본과 통장사본, 약정서가 전부. 사무실에 나올 필요 없이 인터넷 홈페이지(mfk.or.kr)에 사연을 올리거나 전화(02-3275-7080) 한 통이면 된다. 단, 통장에 돈이 있어야 빌려줄 수 있다. 다행히 7월말 현재 잔고는 200만원. 절박한 심정을 가진 이웃들이 조금씩 나누면 6명 정도 혜택을 볼 수 있다.
사실 이 돈으로 무슨 대출을 할까 싶다. 큰 액수는 아니지만 그래도 돈이 왔다 갔다 하는데 얼굴도 보지 않고 대출을 한다는 게 가능한 일인가. 지난 31일 서울 여의도 국민일보 빌딩에서 더불어사는사람들 배순호(73·사랑의교회 장로) 부이사장과 이 대표를 만나 물었다. 이들은 ‘고마운 대출’이 가능한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빌려준 것은 돈이 아니라 신뢰입니다.”
전화 한 통이면 ‘대출 OK’
노점에서 관할 구청의 허가를 받고 구두수선 집을 운영하는 한 수선공은 장기 불황으로 어려움을 겪자 도로점용료를 계속 밀렸다. 결국 허가취소 위기에 놓였다. 더불어사는사람들을 찾았다. 50만원 대출을 받았고 그는 계속 구두 수선을 하게 됐다.
휴대전화 요금은 물론이고 관리비까지 계속 밀려 전기·난방이 끊어질 상황에 처했다는 20대 여성은 사는 게 너무 힘들어 마포대교를 지나며 생각했단다. ‘과연 사는 게 이익인가, 죽는 게 이익일까.’ 그렇게 두려움과 사투를 벌이다 반신반의하며 더불어사는사람들에 연락했고, 한 달 치 관리비 14만원을 빌렸다. 자신의 딱한 사정만 듣고 돈을 내준 것이다. 그는 7개월 동안 2만원씩 성실 상환했고 몇달 전 추가대출까지 받았다.
이들 외에도 자녀 교복비나 학자금이 없어서, 병원비가 없어 더불어사는사람들을 노크하는 이들이 많다. 대부분은 정부 지원에서조차 소외 받은 취약 계층이다. 그런데 이들이 당장 필요로 하는 금액은 큰돈이 아니다. 최소한의 생계비용이다.
“3만원을 빌려달라는 전화를 받은 적도 있습니다. 일용직 노동자였는데, 10만원을 빌려줬어요. 2주 만에 다 갚으시더라고요. 일이 없으니 추가대출을 원해 15만원을 빌려줬습니다. 며칠 뒤 외국에서 일하게 됐다며 전 재산이나 마찬가지인 체크카드를 아예 맡기고 가셨어요.” 배 장로는 “신뢰에 대한 답이라고 생각한다”며 웃었다.
대출, 그 이상을 주는 게 목적
틀니를 꼭 해야 한다는 한 아주머니가 대출을 부탁한 적도 있다. 이 대표는 아주머니가 사는 서울 은평구 치과마다 전화를 돌렸다. 마침 한 곳에서 무료로 틀니를 해주겠다는 연락을 받았다. 아주머니는 대출받을 필요가 없어졌다. 오히려 정부에서 지원받은 20㎏ 쌀을 나누고 싶다고 했다. 30일 이 대표가 그 쌀을 받아왔다. 더불어사는사람들을 찾는 더 어려운 이웃에게 전달할 계획이다.
직업을 소개해준 적도 있다. 대출은 하고 싶은데 갚을 길이 없거나 대출은 받았는데 일이 안 돼 상환이 어려운 경우, 더불어사는사람들을 돕는 여러 손길들에 부탁한다. 그렇게 해서 지방에 있는 한 신용협동조합에 주 1회 세 시간 청소하고 5만원의 일당을 받는 일자리를 얻어주기도 했다.
배 장로는 “더불어사는사람들을 찾는 이들은 제도권 금융에선 돈을 빌릴 수 없는 분들이 대부분”이라며 안타까워했다. 신용불량자이거나 담보가 없거나 소득 수준이 아주 낮다. 한부모 가정도 많다. 정상인 가정에서 대출을 의뢰한 건수는 10%도 안 된다.
“대출 업무만 해서는 안 돼요. 그분들이 정상적으로 생활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까지 해야 합니다. 병원비가 필요하다면 후원 병원을 통해 물품 기부 형식으로 건강검진권을 받아줍니다. 일해야 대출금도 상환할 수 있으니 작은 일자리도 알아봅니다. 대출금을 잘 갚다가 갑자기 상환이 끊겼을 땐 대부분 장사가 안 되는 경우입니다. 대출자가 운영하는 식당에서 회식을 하거나 일거리를 아예 물어다 대출자가 운영하는 가게에 제공한 적도 있어요. 매상을 올려야 돈도 갚을 수 있잖아요. 법률상담도 해주고, 컴퓨터도 구해주고, 생일축하 케이크를 배달한 적도 있습니다.”(이 대표)
더불어사는사람들은 ‘풀타임 봉사자’
20대 때부터 신협에서 근무해온 이 대표는 2007년 사직하고 이듬해 보건복지부에서 실시하는 ‘마이크로 크레딧’(소규모 사업지원 위한 무담보 소액대출) 교육을 받았다. 국내 여러 NGO들에 관련 사업을 제안했지만 소통이 되지 않았다. 그러던 중 배 장로를 만났다.
외국계 은행에서 30년간 근무하고 조기 은퇴한 배 장로는 시카고 무디성서신학원을 졸업하고 1999년 3월 사랑의교회와 중동선교회에서 키르기스스탄 선교사로 파송됐다. 현지에서 10년 넘게 마이크로 크레딧을 통한 선교사역을 감당했다. 선교 후원금이 자본금이었고, 현지인에게 100∼500달러 소액 대출을 하면서 복음을 전했다.
여기에 오랫동안 신협과 생협 운동에 적극 참여해온 전양수 이사장이 힘을 보탰다. 방글라데시의 ‘그라민뱅크’를 모델로 3000만원을 출자해 마침내 2011년 8월 30일 더불어사는사람들 창립식을 가졌다. 대출은 이듬해부터 시작했다. 상주 직원 없이 11명의 이사급 임원들이 무보수로 일한다. 그야말로 헌신된 봉사자들이다.
“교회만큼 나눔 사역을 잘하는 곳이 없습니다. 그런데 나눔은 노약자나 일을 하지 못하는 이들에게 필요한 것이지, 다른 이들에겐 신용을 가르쳐야 합니다. 고기 잡는 법을 알려줘서 자립, 자활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배 장로)
더불어사는사람들이 이제 막 그 일을 시작한 셈이다. 출자금과 후원금으로 운영되는 더불어사는사람들은 지난 6월말 현재 대출 328건, 대출 누적액이 1억3900만원이다. 상환율은 89%에 이른다. 따지고 묻지 않아도 믿음 하나로 이뤄낸 결과물이다.
“이게 더불어 사는 공동체의 특징입니다. 돈을 빌려간 분들이 상환과 함께 오히려 출자하거나 정기 후원금을 보내오기도 합니다. 더 어려운 이웃들이 도움을 받았으면 하는 마음을 갖게 된 것이지요. 신뢰를 줬더니 더 큰 것으로 보답하려는 ‘선순환 구조’가 우리 안에서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두 봉사자는 돈보다 더 중요한, 사람의 마음을 배불리 하는 방법을 실천하고 있었다.
노희경 기자 hkroh@kmib.co.kr
“분유값 없어요, 전기가 곧 끊겨요…” 힘드시죠 돈 빌려드릴테니 힘내세요
입력 2014-08-02 02: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