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수한 운전기사 양회정(55)씨는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의 마지막 행적에 대해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온갖 위험을 무릅쓰고 유씨의 도피를 지근거리에서 도왔던 양씨는 “이미 늦었다고 생각해 유씨를 데리러 가지 못했다”고 주장하는 등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진술을 되풀이하고 있다.
인천지검 특별수사팀(팀장 이헌상 2차장검사)은 전날에 이어 30일 오전부터 유씨의 마지막 행적을 밝히기 위한 강도 높은 조사를 진행했다. 검찰은 앞서 자수한 김명숙(59·여·일명 김엄마)씨와 양씨의 부인 유희자(52)씨 경우와는 달리 양씨를 29일 밤 귀가시키지 않고 인천구치소에서 재웠다. 검찰 관계자는 “현재 양씨의 진술이 진실이라고 믿을 만한 확신을 주지 못한다”며 “확인할 사항이 많다”고 말했다.
양씨의 진술 중 가장 의문스러운 부분은 지난 5월 25일 검·경 추적팀이 전남 순천의 별장 ‘숲속의 추억’ 압수수색 때 도피한 뒤 홀로 남겨진 유씨를 다시 구하러 가는 시도를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양씨는 도피 당일 오후 경기도 안성 금수원에서 김엄마를 만나 유씨에 대해 ‘걱정’만 했다고 말했다. “시간적으로 이미 늦었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추적팀이 별장까지 포위망을 좁히는 상황에서 유씨가 검거될 것으로 판단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별장 압수수색 당시 추적팀이 유씨를 검거하지 못한 사실은 언론보도를 통해 즉시 알려졌다. 양씨는 자신이 종교적 지도자로 모시던 유씨가 홀로 도주해야 하는 상황을 그대로 방치하고 있었다는 말이 된다. 인천지검 관계자는 “자기가 ‘주군’처럼 모시던 사람한테 너무나 무책임한 행동이어서 믿기 어렵다”며 “진술의 신빙성에 대한 확인 작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실제 양씨는 5월 25일 도주 당시 전북 전주 처제집에 들러 “유 전 회장을 순천에 두고 왔다. 구하러 가자”며 도움을 요청했었다. 또 기독교복음침례회(일명 구원파) 신도인 전모씨에게 전화해 도움을 요청했다가 거절당하기도 했다. 이처럼 유씨를 적극적으로 구하려 했었던 양씨가 금수원에 들어간 이후부터는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건 앞뒤가 맞지 않는다.
한편 유씨의 유류품으로 발견된, 천으로 만들어진 가방은 김엄마 소유인 것으로 확인됐다. 김엄마는 유씨의 식사를 만들어주기 위해 지난 5월 금수원과 별장을 5∼6차례 오갔다. 김엄마는 이 천가방에 대해 “별장에 갔을 때 두고 온 것”이라고 검찰에서 진술했다. 이는 유씨가 별장에서 도망칠 때 천가방을 급히 챙겼을 가능성이 있다. 유씨는 도주 기간 검거에 대한 심리적 압박감에 시달렸던 것으로 추정된다. 김엄마는 검찰 조사에서 “별장에 은신하던 유 전 회장은 평소에 비해 식사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기 때문이다.
정현수 기자 jukebox@kmib.co.kr
[유병언 일가 수사] 양회정 “이미 늦었다고 생각, 구하러 가지 않았다”
입력 2014-07-31 02: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