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수의 역습’

입력 2014-07-31 02:50
30일 찾은 서울 마포구 동교동 '홍대 앞' 거리. 카페가 몰려 있는 골목마다 한 집 걸러 한 집꼴로 빙수 메뉴 입간판을 내놓고 영업 중이었다. 여름철 별미인 빙수는 이제 '식사 후 커피 한 잔'만큼이나 대중화됐다. 그러나 정작 카페를 운영하는 개인사업자들은 "애물단지가 따로 없다"고 입을 모은다. 여름철 '효자 메뉴'여야 할 빙수가 어쩌다 이들에겐 천덕꾸러기가 됐을까.

몇 년 전부터 대기업 프랜차이즈 커피점들이 앞 다퉈 다양한 빙수를 출시하자 개인 카페들도 질세라 빙수를 메뉴에 올렸다. 그러나 빙수 원료가 점차 고급화되고 제작 과정이 까다로워지면서 개인 카페 업주들은 대기업의 저단가 시스템을 따라가지 못해 허덕이고 있는 실정이다.

서울의 한 주택가 골목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김진영씨는 고민 끝에 지난 6월 빙수를 시작했다. 김씨는 “주변의 다른 카페들이 너도 나도 빙수를 하니까 안 할 수 없는데, 노동력이 다른 음료의 4배 이상 들고 재료값도 비싸다. 제일 싼 아메리카노 한 잔보다도 남는 게 없다”고 토로했다. 빙수는 김씨 카페 매출의 절반을 차지할 만큼 인기지만 매출 대비 순익 비율은 반토막이 났다.

업주들의 가장 큰 고민은 ‘순익’이다. 얼음에 팥과 과일시럽, 연유를 뿌려주는 값싼 ‘토종 빙수’로는 명함도 못 내미는 상황이다. 대기업 카페들이 망고빙수, 블루베리빙수, 흑임자빙수 등 단가 높은 빙수로 소비자들의 입맛을 잔뜩 끌어올려놨기 때문이다.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눈꽃빙수’는 고운 입자의 눈꽃 얼음을 만들어주는 전용 기계만 500만∼900만원이나 한다. 순이익 3000원짜리 빙수를 3000그릇 팔아야 손익분기점을 넘기는 것이다. 개인 카페들은 하루 20∼30그릇을 팔면 많이 팔았다고 본다. 사실상 여름 한철 장사인 빙수로는 기계 투자비용을 뽑아내기도 어렵다.

빙수를 만드는 과정이 지나치게 까다로운 것도 불효 품목으로 꼽히는 이유다. 평균 4∼5명 아르바이트생을 두고 영업하는 프랜차이즈 카페와 달리 ‘1인 체제’로 운영되는 개인 카페들은 빙수 주문이 들어오면 10여분간 빙수 제작에만 매달려야 한다. 한 카페 업주는 “빙수를 만드는 동안 커피 주문이 들어오면 기다리는 손님 눈치를 보느라 죽을 맛”이라고 털어놨다.

이 때문에 빙수를 주력 메뉴로 내세웠던 개인 카페들은 여름이 지나고 매출이 급락하면서 아예 망하는 경우도 생긴다.

서울의 또 다른 카페 업주 최모씨는 “카페는 겨울이 시작되는 11월부터 매출이 급속히 줄다가 간신히 1∼2월을 버티고 3∼4월에 결국 영업을 포기하는 사람이 많아 봄에 매물이 쏟아진다”고 설명했다.

서울연구원이 지난 2월 발간한 보고서 ‘서울의 음식·음료업 중 무엇이 크게 증가했나’에 따르면 각종 음식·음료업 중 지난 3년간 연평균 사업체 증감률이 가장 높은 품목은 커피(16.7%)였다. 앞 다퉈 커피전문점을 창업한 개인사업자들이 ‘빙수 대란’에 울상을 짓고 있다.

정부경 기자 vick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