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얘야, 후회할지도 몰라”

입력 2014-07-31 02:34

“아이가 잔뜩 놀란 고양이 얼굴을 한 채 웅크리고 있더라고요.”

지난 3일 오후 8시쯤 서울 성북경찰서 안암지구대 이영기(48) 경위는 성북구 돈암초등학교 인근에서 중학교 1학년 이모(13)양을 발견했다. 날이 어두워지는데도 길에 주저앉아 멍하니 있던 이양은 순찰차가 접근하자 건물 옆으로 달아나 숨었다. 이 경위가 차에서 내려 다가가자 놀란 눈을 껌벅였지만 도망가진 않았다. 보따리 하나를 가슴에 꼭 안은 채였다.

이양은 이날 처음 가출한 터였다. 지하 단칸방에서 엄마와 단둘이 사는데 엄마의 폭행에 집을 나왔다고 했다. 보통 가출 청소년은 경찰을 만나면 반항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양은 대화 내내 조곤조곤 자신의 입장을 설명했다. 이양이 소중하게 껴안고 있던 보따리에는 다음날 학교에 갈 생각으로 챙겨온 책과 학용품, 옷가지가 담겨 있었다. 입고 있던 옷도 학교 체육복이었다.

이 경위는 이양이 나쁜 환경에 노출되기 전에 집으로 돌려보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엄마가 원망스럽더라도 한순간이다. 널 정말 생각하고 위해주는 사람은 엄마뿐”이라며 “지금 선택을 후회할지도 모르니 다시 한번 잘 생각해보라”고 설득했다. 묵묵히 듣던 이양이 “집을 나온 게 후회된다”고 말하자 이 경위는 서둘러 이양의 엄마에게 연락했다. 딸 걱정이 가득했던 엄마는 한달음에 지구대로 달려왔다. 그는 “학교에서 일진 아이들과 친하게 지내는 딸을 보면서 나쁜 길로 빠지지는 않을까 걱정이 돼 엄하게 혼을 냈다”고 말했다.

이 경위는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모녀를 서울시에서 운영하는 아동보호전문기관에 보내 상담 받도록 했다. 기관 관계자는 30일 “이양과 엄마 모두 전문 상담을 받으며 관계가 회복되고 있다. 부족했던 대화를 자주하면서 서로의 오해도 많이 해소됐다”고 말했다. 이 경위는 “우리의 작은 관심과 노력에 한 사람의 인생이 달라질 수 있다는 걸 절감했고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황인호 임지훈 기자 inhovato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