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對)러시아 제재를 주저하던 유럽연합(EU)이 마침내 방향을 전환했다. 말레이시아항공 여객기 피격 사건에 대한 책임을 물어 러시아 경제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광범위한 경제 제재 조치에 동참하기로 결정했다. 미국도 추가 제재에 나섰다.
EU 28개 회원국 대표들은 29일(현지시간) 벨기에 브뤼셀에 모여 금융 방위 에너지 등 러시아 경제 주요 부문에 직접적인 타격을 줄 수 있는 러시아 경제 제재안에 합의했다. 구체적인 제재 내용은 30일이나 31일 발표된다.
파이낸셜타임스(FT) 등에 따르면 우선 EU는 러시아 정부가 50% 이상 주식을 보유한 은행이 유럽 금융시장에서 주식과 채권을 팔지 못하도록 결정했다. 또 러시아에 대한 무기 수출을 금지했다. 이에 따라 프랑스의 상륙함 등 12억 유로(약 1조2000억원) 규모의 러시아 무기 수출 계획도 중단된다. 아울러 심해 시추, 셰일 가스와 북극 에너지 탐사 기술 등 민간 산업과 군사 부문에 동시에 사용될 수 있는 기술의 러시아 수출도 금지키로 했다.
러시아의 크림자치공화국 합병으로 우크라이나 사태가 시작된 이후 EU는 러시아와 크림의 개인과 기업 등의 자산 동결과 비자 발급 중단 조치 등을 취했으나 직접적인 경제 제재를 가하지는 않았다.
EU와 보조를 맞춰 미국도 추가 제재를 단행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백악관 회견을 통해 “에너지 분야 품목과 기술의 러시아 수출을 금지하고, 은행과 방위산업체로도 제재를 확대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미 재무부는 이에 앞서 러시아 대외무역은행(VTB)과 자회사인 뱅크 오브 모스크바, 러시아 농업은행 등 3곳에 대한 미국인의 신규 금융거래를 중단시켰다.
FT는 “냉전 종식 이후 가장 강력한 러시아 제재에 EU와 미국이 합의했다”며 “25년간 이어져온 러시아와의 관계의 장(chapter)이 닫히고 있다”고 평가했다.
뉴욕타임스(NYT)는 미국과 EU가 러시아의 부와 힘의 원천인 석유자원을 정면으로 겨냥했다면서 러시아에 시추 기술 지원을 금지한 것은 러시아에 막대한 충격을 줄 것이라는 전문가의 의견을 소개했다. EU 전문매체인 ‘EU 옵서버’는 EU 소식통을 인용, 새 제재로 러시아 경제가 올해 230억 유로(약 31조6500억원), 내년 750억 유로(약 103조2000억원)의 손실을 볼 것으로 전망했다. 이는 올해와 내년 러시아 전체 GDP의 각각 1.5%, 4.8%에 해당하는 규모다.
워싱턴=배병우 특파원 bwbae@kmib.co.kr
EU, 對러 전방위 제재
입력 2014-07-31 02: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