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손영옥] 책 안 읽는 게 삼성전자 탓?

입력 2014-07-31 02:34

“삼성전자 때문에 책을 읽지 않는 나라가 됐다니까요.”

힐난조의 이 말이 처음엔 황당하게 들렸다. 전후 설명을 들으니 수긍 못할 바도 아니었다. 초딩은 물론 유치원생에게도 필수품이 된 스마트폰 아닌가. 그 스마트폰 제조사의 대명사는 글로벌 기업 삼성전자다.

아이들은 식탁에서도 스마트폰에 코를 처박고 카톡을 하고, 청소년들은 횡단보도를 건너면서도 스마트폰에 눈을 박고 ‘문자질’이다. 어른들조차 지하철에서 스마트폰이 보여주는 드라마와 야구 중계에 빠져 있다. 개중에는 뉴스 검색을 하는 이도 있겠지만, 한때 그들 손에 쥐어졌던 책이 ‘물신(物神)’이 되다시피 한 스마트폰에 밀린 것은 토를 달기 어려운 사실이 됐다.

‘종이문화’ 강타한 스마트폰

삼성전자는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을 평정한 패자다. 2009년 겨울 애플의 신병기 아이폰이 국내 상륙했을 때, 넋 놓고 있던 삼성전자를 세상은 불안한 눈초리로 바라봤다. 웬걸? 삼성전자는 이듬해 봄 오너 이건희 회장의 경영 복귀를 계기로 대반격에 나섰다. 2년여 만에 판세를 뒤집었다. 누구도 예상 못한 단기간의 역전극. 여러 요인이 있겠으나 그게 삼성전자의 힘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시장조사 기관 SA 등에 따르면 삼성전자 갤럭시의 글로벌 판매량은 지난해 3억1980만대. 애플 아이폰 판매량 1억5300만대의 배다.

문제는 예상했던, 그러나 이 정도까지라고는 상상 못했던 스마트폰발 충격파다. 말하자면 종이 문화의 쇠락이다. 종이가 상징하는 지식산업의 침몰이다. 신문이든, 책이든 종이로 정보를 습득하는 문화는 빠른 속도로 죽어가는 중이다. 주요 출판사와 서점은 최악의 실적 악화로 망연자실해 있다. 대표적인 단행본 출판사 민음사는 2003년 이후 첫 적자를 냈다. 최대 서점 교보문고도 3년 만에 적자로 돌아섰다. ‘출판 신화’ 주인공 김영사는 매출 하락으로 경영진이 교체되는 홍역을 치렀다.

전주제지가 알루미늄 비닐 포장이 지배했던 라면 봉지 시장에 출사표를 던지고 기술 개발에 나섰다니 말 다했다. 전통적인 종이 수요가 죽으니 친환경적 라면 종이 포장재로 신수요를 창출하겠다는 위기감의 발로다.

그래서 말인데, 이쯤에서 삼성전자가 나서는 건 어떨까. 스마트폰 때문에 책을 읽지 않으니 원인제공자인 삼성전자가 종이 문화를 살리는 사회공헌에 나섰으면 하는 것이다. 반론이 없지 않겠다. 인과관계가 규명되지 않은 것 아니냐고. 흡연과 폐암의 상관관계를 따지는 일만큼 논란의 소지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증명이 꼭 필요한 일일까.

크리넥스티슈로 대표되는 유한킴벌리의 사례는 신선하다. 화장지, 기저귀, 생리대 등 베어진 나무를 원료로 해 먹고사는 유한킴벌리는 벤 만큼 나무를 심는다. 44년 된 이 회사는 30년째 ‘우리강산 푸르게 푸르게’ 캠페인을 통해 나무를 심는다. 국유림에서 시작해 학교 숲, 동네 숲 조성에도 나서는 등 한 해 4000, 5000그루씩 심는다. 동북아까지 나가 활동을 벌인다. 그래선지 유한킴벌리가 산림 황폐화의 주범이라는 인식은 국민 사이에 없다.

책 문화 살리기 사회공헌해야

촌스러운 예지만 다이너마이트를 발명한 노벨도 있다. 의도와 달리 군사적으로 사용돼 ‘죽음의 상인’으로 불리는데 자괴감을 느낀 그는 수익을 인류 발전에 쓰겠다며 노벨상을 제정했다.

삼성전자에 책 문화 살리기 사회공헌을 제안하는 이유도 비슷한 맥락이다. 국민정서이기도 하다. 여론조사까지는 못 해봤으나 주변에 물어봤다. 열에 아홉이 대환영이었다. 스마트폰에 빠진 자녀가 걱정인 엄마들이 특히 반색했다. 독서는 개인 취미에 그치지 않는다. 그게 모인 지식의 총체는 국가의 미래 부(富)의 원천이다.

손영옥 문화부장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