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욱 교수의 백혈병 이야기] 약가 인하, 신약개발 先 투자가 답이다

입력 2014-08-05 02:34

필자의 기억에 2005∼2006년도는 병원에서 연구원들과 2세대 표적항암제 스프라이셀, 타시그나의 국제 2상 임상연구를 아시아에서는 유일하게 맡아 수많은 밤을 지새웠다. 미국의 다국적 제약사 브리스톨마이어스스퀴브사(BMS)의 스프라이셀과 2000년 초 글리벡 개발을 필두로 전 세계 항암제 개발 제약사인 스위스 노바티스사의 타시그나 임상연구가 2005년 같은 해에 동시에 시작돼 만성골수성백혈병 표적항암제 개발 연구 분위기를 화끈하게 달구고 있었다.

환자수가 다른 암에 비해 훨씬 적고 글리벡 치료에 실패한 환자만을 대상으로 진행되는 2상 임상연구여서 해당 제약사들은 서로 더 많은 우수한 임상연구기관과 환자를 확보하려는 경쟁이 치열했다. 2가지 표적항암제의 연구에 전 세계 50개국 이상으로부터 100개 이상의 병원이 참여하게 됐다.

2005년 3월부터 시작된 스프라이셀 임상연구에는 약 2000명 이상의 환자를 모집했고 같은 해 9월부터 시작된 노바티스사의 타시그나 임상연구에는 약 700명 이상의 환자가 참여했다. 자사의 임상연구에 더 많은 환자를 확보함으로써 상대방 회사의 임상연구에 참여하는 환자수를 줄여 상대적으로 더 빠른 기간 내에 먼저 2상 임상연구를 마치고, 처음 진단된 환자를 대상으로 한 3상 임상연구를 먼저 시작할 수 있는 장점을 선점하기 위한 제약사 간의 경쟁은 치열했다.

막대한 연구비를 투자해 2000명 이상의 2상 연구 환자를 모집한 BMS의 연구 계획서에는 다양한 용법, 용량에 대한 연구도 포함돼 오늘날 하루에 한 번 복용하는 간편성을 강조할 수 있는 내용이 있었다. 이에 경쟁 치료제인 타시그나의 1일 2회 공복시 복용이라는 불편감을 부각시키는 효과를 보고 있었다. 개발이 늦어 2008년도에나 2상 임상연구가 시작된 화이자사의 보슬립과 일양약품의 슈펙트 임상연구는 이미 스프라이셀과 타시그나의 시판 허가가 나 있는 상황이어서 치료에 실패한 환자를 대상으로 하는 2상 연구에 대상 환자의 모집이 아주 어려웠다.

이 난제를 해결하기 위해 두 회사의 연구 계획서는 글리벡 내성뿐만 아니라 스프라이셀 또는 타시그나 치료에 실패한 환자까지를 모두 연구대상에 포함시켰고, 위험을 감수하고 예상 치료 유효율을 최대로 올려 대상 환자 수를 최소화하는 전략을 가지고 임상연구를 시작했고 모든 여건이 열악한 국산 2세대 표적항암제 슈펙트는 1상과 2상 임상연구를 연속적으로 진행함으로써 결과 도출에 필요한 기간을 단축하기 위해 노력했다.

초기 임상연구를 진행하면서 필자는 ‘국내 제약사들의 개별 노력만으로 블록버스터급 항암 신약의 전임상·임상연구 개발이 가능할까?’라는 의문 아래 국내 제약사의 역량을 걱정할 수밖에 없었다. 2011년 3월 보건복지부의 지원을 받아 출범한 ‘시스템통합적항암신약개발사업단’으로 인해 국가 차원에서 국내 개발자나 제약사들이 공통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시스템이 생겼다고 생각했으나, 해를 거듭할수록 정부의 재정 지원이 축소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니 또다시 가슴이 답답해진다.

2013년 미국혈액학회 공식 의학잡지인 블러드(Blood)지 사설에 실린 ‘일양약품이 개발한 슈펙트 때문에 전 세계에서 모든 만성골수성백혈병 표적항암제 치료 약가가 가장 싼 국가는 한국이다’는 내용에 주목해 보자. 우리나라의 보건의료재정을 건실하게 할 수 있는 진정한 방법은 의료 소비자인 암 환자들에게 고가라는 이유로 항암신약의 보험 처방을 1∼2년 이상 지연하는 부자연스러운 반인권적 약가 인하 정책이 아닌, 자연스럽게 약가를 인하할 수 있는 ‘국산 항암신약 개발에 선 투자하는 것’임을 국회와 정부의 정책 입안자들은 깨달아야 할 것 같다.

김동욱 가톨릭대학교 서울성모병원 혈액내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