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과수 ‘마디모 프로그램’ 아시나요?

입력 2014-07-30 03:45
올 초 A씨는 차를 몰다 접촉사고를 냈다. 빨간 신호에 멈췄다 출발하면서 앞차를 살짝 받았다. 아주 느리게 진행하던 터라 차량 피해는 거의 없었다. 그러나 앞차 운전자는 합의금 60만원을 요구하며 "(돈을 안 주면) 병원에 가서 치료란 치료는 다 받겠다"고 했다. 다툼은 의외로 간단히 해결됐다. A씨가 "마디모 프로그램을 신청하겠다"고 했더니 그 운전자는 "없던 일로 하자"며 그냥 가버렸다.

서행하던 차의 사이드 미러에 살짝 부딪혔는데 전치 2주 진단서를 끊는 사람, 범퍼가 약간 긁힌 접촉사고에 상해 2주 진단서를 받아오는 사람. 이런 '나이롱 환자'를 골라내는 기술이 있다. 교통 상해 사고를 감정하고 재연하는 '마디모(MADYMO) 프로그램'.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운영하는 이 프로그램의 이용자가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

경찰청은 2010년 32건이던 마디모 분석 의뢰가 해마다 배 이상 늘어 지난해 1250건, 올해는 1분기에만 1500건을 기록했다고 29일 밝혔다. 네덜란드 응용과학연구소에서 개발한 마디모는 차량 파손 상태, 도로에 남은 흔적, 블랙박스 영상 같은 자료를 입력하면 3D 영상 등으로 사고 상황을 재연해 분석한다. 이를 통해 운전자나 피해자가 사고 당시 어느 정도 충격을 받았는지 판별하는 장비다. 국과수는 보험사기 같은 교통 범죄에 대처하기 위해 2008년 이 장비를 도입했다.

예를 들어 경미한 접촉사고에서 피해자가 '뒷목'을 잡고 내려 전치 2주 진단을 받고는 과도한 보상금을 요구하는 경우가 있다. 이럴 때 사고 상황을 마디모에 입력하면 '추돌 충격에 앞차가 전진한 속도는 시속 4∼5㎞로 추정되며 이 정도론 전치 2주 상해 가능성이 매우 낮다'는 식의 판정이 나온다. 그러면 피해자는 보상금을 돌려주거나 심할 경우 보험 사기로 형사처벌까지 받을 수 있다.

'꾀병' 환자를 가려내는 데 즉효인 데다 비용도 들지 않다 보니 '억울한' 가해자와 보험사들이 이 프로그램에 몰리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요즘은 교통사고 10건 중 1건 꼴로 마디모를 거친다. 특히 보험사들이 앞 다퉈 의뢰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마디모 분석 의뢰가 급증하면서 교통사고만 나면 드러눕고 보는 행태도 크게 개선되리란 기대가 나오고 있다. 장기적으로 차량 보험금이 낮아지는 효과도 예상된다. 하지만 아직 기술적으로 탑승자의 만성질환 같은 개인적 특성을 반영하지 못하고, 이의제기 절차도 미흡해 개선이 필요한 상황이다.

지난 3월 B씨는 다른 차가 뒤에서 들이받고 달아나자 뺑소니로 신고한 뒤 병원에서 허리 치료를 받았다. 그러나 마디모 분석에서 '상해 불인정' 결과가 나왔고 가해자는 되레 A씨를 보험사기 혐의로 고소했다. A씨는 "전문의 진단서를 인정하지 않으면 내 피해를 어떻게 입증하라는 거냐"며 "뺑소니 친 사람이 오히려 나를 보험사기꾼으로 몰고 있다"고 말했다.

마디모 분석 결과는 사법적·행정적 효력을 갖기에 결과 자체에 대해선 이의제기를 할 수 없다. 경찰은 "민사재판을 벌여 마디모와 진단서 중 어느 쪽이 맞는지 다퉈보는 수밖에 없는데 변호사 비용이 더 드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무작정 마디모 분석을 의뢰하는 경우마저 있다 보니 국과수는 업무 과부하를 호소한다. 마디모 신청 후 결과를 받기까지 두 달쯤 걸린다. 하루 평균 40건씩 신청이 밀려들지만 이를 처리하는 담당 연구사는 5명뿐이다.

전수민 임지훈 기자 suminis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