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박남선 (10·끝) 늘 감동·기적 일어나는 인도 M.I. 되게 하소서

입력 2014-08-01 02:17
박남선 선교사가 최근 서울 M.I.(국제선교회)에서 기자에게 선교 사역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허란 인턴기자

사람에게 있어서 졸업식만큼 뜻깊은 날은 없을 것이다. 수년의 성취에 대한 자부심과 자신의 노력·역경에 대한 회고는 인생의 새 출발을 더욱 다지게 해주기 때문이다. 더욱이 삶 속에서 불신과 무신, 방종 등을 일삼다 주님을 만나 회개와 희망을 서약하는 인도 나갈랜드 M.I. 선교대학원(MIGSM)의 졸업식은 항상 감동과 뿌듯함을 선사하면서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증명하는 자리가 되고 있다.

지난 2월 M.I. 선교대학원 3회 졸업식이 열렸다. 30대 초반의 요나단 전도사는 졸업과 동시에 나갈랜드 인근 마니풀주(州) 선교사로 파송됐다. 그는 우리 M.I에 처음 왔을 때 후원자가 없어 제지공장에서 일하고 있었다. 그의 튼실한 신앙을 믿고 우리는 무료로 신학 공부를 시켜주고 주택 렌트비, 생활비도 보조해줬다. 그런 요나단 전도사가 이제 다른 양들의 전도를 위해 선교사로 파송 가는 것을 보고 우리는 얼마나 행복했는지 모른다. 한국에서 온 오지영 자매도 이번 졸업 멤버다. 몇 년 전 영어공부 겸 관광차 나갈랜드에 왔다가 보호구역 허가증이 없어 경찰에 붙잡힌 일이 있었다. 주변의 요청으로 내가 가서 보증을 선 뒤 그를 우리 M.I.로 잠시 데려왔다. 오 자매는 이곳 예배를 접하면서 감명받았고 이듬해 이곳에 신학예비생으로 다시 와 MIGSM에 입학했다. 피아노로 교회 반주를 섬겼고 아르바이트를 통해 자신의 학비를 댔다. 너무도 당찬 신세대였다.

부모님이 모두 힌두교 신자인 이삭이라는 형제는 M.I. 교회를 통해 어머니가 치료 받고 나으신 뒤 본격적인 신학생의 길을 걸었다. 그의 학구열과 신앙에 감명받은 한국 목사님이 그의 학비를 지원했다. 물론 최고 후원자는 하나님이셨다.

나갈랜드 사역은 점차 외부에도 많이 알려지고 있다. 지난 2월 17∼19일 2박3일간 이곳에서는 세계전문인 선교 제1회 남아시안대회가 열렸다. 한국 M.I. 대표이신 전동주 목사님이 나갈랜드에 오셔서 세미나를 열었고 나갈랜드 주변 여러 나라의 선교 목회자 150여명이 참석해 해외 사역과 선교의 중요성을 공감했다. 여름휴가를 맞아 한국에 와도 내게는 나갈랜드 사역의 연장선상이다. 나갈랜드에 왔던 목회자들을 만날 뿐만 아니라 각종 교회나 집회에서 많은 후원을 요청하고 있다. 지난 20일 방문한 서울 강서구의 하늘빛사랑교회는 내가 한국에서 교회 사역을 할 때 집사였던 이용안 목사님이 최근 개척하셨다. 이 목사님은 교회를 개척한 뒤 나를 초청했고 올해부터 선교헌금을 보내겠다고 약속하셨다. 이외에 M.I. 스태프와 제자들이 개척한 교회들을 방문했으며 선교 비전을 제시하는 바쁜 나날을 보냈다. 22∼24일 방문한 경북 울진의 한 교회에는 M.I.인도에서 한글을 공부한 한 사역자가 선교사로 파송됐다. 나갈랜드에서 훈련한 성도가 선교대국 한국으로 역파송된 것도 크나큰 보람이다. 한국의 신앙인이 외국의 불신자를 주님에게 이끌고 거기서 많은 기적을 목격하노라면 우리 선교가 또 다른 한류가 될 수 있다는 생각도 든다. 어딜 가도 나는 한국인이고 한국교회연합(한교연) 소속 예장진리총회(총회장 송금자 목사) 교단 목사임에 자부심을 느낀다.

하지만 한편으로 낯선 곳에 와 사역을 하고 있는 선교사로서 오늘의 한국목회 현장을 보면 아쉬움도 없지 않다. 세월호가 성장만을 목표로 질주한 한국을 상징한다면 교회 역시 같은 범주에 속한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도 든다. 특히 지금의 한국교회는 기도와 예배의 열기가 점차 식어가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 교회가 사치와 향락에 젖어가는 사회를 바로잡아야 함에도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것 같다. 은혜와 성령은 공짜로 오지 않는다. 겸손하게 남을 섬기면서 동시에 주님밖에 구원자가 없다는 뜨거운 믿음이 바탕이 돼야 한다.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과 한국교회가 다시 일어나는 희망을 기대하고 기도 제목으로 삼겠다.

정리=고세욱 기자 swk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