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으며 하나님의 현존(現存)을 느꼈습니다. 혼자 떠난 여행길이었지만 하나님이 항상 제 옆에 계시다는 걸 실감하며 걸음을 옮겼지요. 순례 기간 내내 큰 위로를 받았습니다.”
최근 서울 서대문구 북아현로 아현감리교회에서 만난 안영섭(48·대전 살림교회) 목사는 이같이 말했다. 안 목사는 안식년 기간이 시작된 지난 4월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로 향했다. 800㎞가 넘는 거리를 28일 동안 걸으며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했고 지나온 삶을 반추했다.
“산티아고에 가고 싶다는 생각은 2000년대 중반부터 쭉 했어요.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걸었던 길이자 내 안에 있는 하나님에게 가는 길이니까요. 육체적으로 힘들기도 했지만 기쁨도 컸습니다. 하나님이 창조한 자연을 만나는 보람이 상당했습니다. 길에서 만난 사람들도 기억에 남고요.”
안 목사는 순례 도중 세월호 참사 소식을 접했다. 순례를 시작한 지 열흘째 되던 날이었다. 숙소에서 한 한국 청년이 비보를 전했고, 인터넷으로 사고 상황을 확인했다. 그는 아이들이 숨지기 직전 배 안에서 휴대전화로 찍은 동영상들을 봤다. 눈물의 순례가 시작된 순간이었다.
“걷는 내내 계속 울었습니다. 걸음을 뗄 때마다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웃음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지요. 여정 내내 아이들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한 명의 어른으로서 아이들한테 부끄러웠습니다.”
안 목사는 하루에 25∼30㎞를 행군했다. 컨디션이 좋을 땐 40㎞를 걷기도 했다. 숙소에 도착하면 매일 밤마다 발에 잡힌 물집을 제거하고 연고를 발랐다.
“평소엔 안 아프던 곳이 말썽을 일으키더라고요. 발가락 관절, 발뒤꿈치…. 만약 여름휴가를 맞아 순례길을 걷고자 하는 크리스천이 있다면 왜 걷고 싶은지 충분히 자문한 뒤 순례에 나서라고 조언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걸을 땐 자기 자신의 ‘몸의 소리’를 잘 들으며 걸으라는 말도 하고 싶고요.”
안 목사는 이날 아현감리교회에서 ‘나의 순례 이야기’라는 주제로 강연을 펼쳤다. 한국샬렘영성훈련원의 7월 월례모임 자리였다. 기독교인 약 20명은 안 목사의 강연을 경청한 뒤 다양한 질문을 쏟아냈다. 순례 도중 길을 잃은 적은 없는지, 순례를 떠날 때는 어떤 신발이 좋은지….
그에게 산티아고 순례길을 다시 가고 싶은 마음이 있는지 물었을 때 돌아온 답변은 이랬다. “다음엔 아내랑 같이 갔으면 해요. 하나님을 향해 걷는 순례의 기쁨을 함께 체험해보고 싶거든요.”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 걸은 안영섭 목사 “28일 동안 홀로 걸으며 하나님의 現存 느껴”
입력 2014-07-30 02:28